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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습기의 내력

습기의 내력

      


우리가 사랑했던 강물 소리에서 

흠뻑 젖은 채 건져진 킹과 메리의 시큼한 털 냄새 진동하고 

어느 날에는 무차별 총소리를 들었다.

새들의 무덤을 찾아 분홍색 원피스로 덮어주기도 하고

해독할 수 없는 지도처럼 번져가는 구름을 보며 

무엇으로든 이름 불러버리면 아는 체 할 수 있다

작은 칼을 만지작거리던  

   

어린 시절은 이야기로 넘쳐났다.     


밤새 집 한 채가 오롯이 불에 타던 날 집 주인은 그날 밤 죽고 개는 검게 그을린 채 집터 근처에 앉아 연신 상처만 핥았다. 집이 포크 레인에 쓸려나가는 몇 날 동안은 사람들 꽁무니마다 따라 걸었다. 점점 거무죽죽해지는 개에게 우리들은 돌멩이를 던졌다. 개는 뒷걸음치다 말고 우리를 향해 한참 서 있었다. 돌멩이를 든 우리들 중 누구도 털에 덮인 개의 눈빛을 읽을 수 있는 아이는 없었다. 그건 언제든 친구를 만들거나 배반하는 이유가 되었고 우리는 저마다의 악몽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갔다. 어디선가 컹컹 개짓는 소리 들리고 누군가 불타는 집으로 자꾸만 걸어 들어갔다. 

     

사막에 가고 싶었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창문 없는 맨 안쪽 방을 휘감을 때

선명하게 보였던 것들

빗물소리 속에서 낙타들이 태어나고 또 고꾸라졌다.  

   

빈 집 무너진 담장 아래 돌멩이를 들추면

돌멩이 아래 동그랗게 모여 있는 돌의 습기 

빗물소리로 호흡하고 빗물소리를 먹으며 흰 얼굴로 잠을 자는  

하얗고 묽은 면처럼 퉁퉁 불은 몸에서 아가미 돋는 


물고기 한 마리

물고기 두 마리

물고기 새 마리 

가만히 귀에 대면 멈출 줄 모르는 빗물소리    

 

물이 불이었던 곳에서 

나는 기도했다. 

언젠가 내가 소원을 빌거든 들어주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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