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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8. 2023

너무 많은 저녁

너무 많은 저녁          



  손이 베이고서야 알았다


  산산조각이 나도 결코 깨지지 않는 것을 유리컵은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떤 꿈은 영원히 밝혀질 의사가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왜 슬픔을 말하는지, 왜 가 닿을 수 없이 멀리 있는 것들의 핏빛은 한결 같은지     

  절대 답장하지 않기를, 그동안의 편지로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찾아와 무릎에 쏟으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를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당신이 연루되어 있기를, 여기저기 전봇대에 의문의 얼굴로 붙어 깊숙이 은폐되기를   

   

  아름답고도 비극적일 수 있는 기회를 움켜쥔

  나의 연인

  나의 스승     

  

  덤불로 짠 스웨터의 실 뭉치, 물을 끓여 쐬는 훈김, 실이 기억하는 무늬, 어떤 무늬처럼     


  온 세상의 저녁들이 밀려와 발목께 고인다

  이미 너무 많이 채굴된 저녁의 말들이 

  이 저녁에도 늦게까지 거리에 나앉아 안에서부터 물크러진다     

 

  다만 한 단어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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