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가 건너편에서 나를 부른다 몇 걸음이라도 더디 걸으면 투명한 공터의 어둠 속으로 스미듯 민수는 사라지기도 한다 민수가 무어라 중얼거리면 자모 몇 개가 날개 부딪는 소리도 없이 검은 새처럼 큰 나무로 날아가 앉는다 나무들이 잠시 가지를 휜다 창문도 지붕도 벽도 없는 너의 집은 참 쓸쓸하구나 그래도 민수의 집은 민수가 있어서 아늑하다 그곳에서 민수는 민수가 아닌 나를 민수라 부르고 민수의 손은 부드럽다 민수는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웃처럼 잘 안다 나를 먼 호수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호수엔 속이 푸른 흰 오리 배 떠 있고 또록또록 물결에 자갈 구르는 소리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오래 들려준다 고개를 돌리면 사방이 새벽안개 속 늪 같기도 해서 천천히 가라앉아 수초들의 뿌리가 일렁이는 걸 보기도 한다 그러면 죽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물결처럼 그림자를 수면에 펼친다 비가 오면 좋겠어 죽은 사람들의 노래 죽은 사람들의 책 죽은 사람들의 사랑이 한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우리를 흩어놓겠지 그러면 민수의 민수인 나는 정말 민수가 될지도 모르고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저 많은 그림자들을 데리고 저 깊은 어둠 한가운데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희미한 옷자락처럼 목소리처럼 바람이 일고 꽃들의 눈물이거나 새들의 웃음이거나 내가 보고 듣지 못하는 것들이 모두 거기에 실려 가버리고 그림자들이 비로소 말하고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 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 민수와 민수의 민수인 나는 서로를 마주 본다 보호자이거나 증인처럼 구름은 입 안 가득 침묵을 머금고 그늘처럼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