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으로 삶을 바꾸는 사람들 : 한니발과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패터슨
"나는 스트릭랜드 부부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골치 아픈 모험에 시달려본 적이 없고 정직하고 점잖다. 둘은 서서히 늙어갈 것이며 아들과 딸은 성년이 되어 때가 되면 결혼하게 될 것이다.
한쪽은 예쁜 아가씨로 자라 장차 건강한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한쪽은 잘생기고 사내다운 남자로 자라 틀림없이 위풍당당한 군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모든 풍족함 안에서 품위 있게 은퇴하여 자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마음껏 누리다가 무덤에 묻힐 것이다.
하기야 수많은 부부들이 다 이런 식으로 산다. 이런 삶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마치 잔잔한 시냇물이 푸른 초원의 아름다운 나무 그늘 밑으로 굽이굽이 흘러가 이윽고 드넓은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이 바다는 너무 평온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초연하여 불현듯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 The moon and sixpence>, 1919, p.36
(민음사, 2000.06.20, 송무 역본 참고)
2025년 새해가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언제나 그래왔고 또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새해에 거창한 목표를 여럿 세웠다.
갓생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N잡, 운동, 재테크, 커리어 등 다양한 목표를 세우고 투두 리스트까지 만들었지만 2025년의 18.6%가 지나는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이룬 것보다 못 이룬 것이 더 많았다.
물론 ChatGPT의 조언처럼 올해가 아직 81%가 넘게 남았기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지난 68일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올해가 지나도 결국 제자리일 것이다. 또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변화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특히 지금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경칩이자 새 학기가 시작된 만큼 변화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한 시기다. 현재 온라인 서점 자기 계발 분야 1위인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의 제목처럼 인생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때다.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작에는 계획한 일을 미루지 않고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의지, 곧 행동이 필요하다. 영국 출신의 작가 사이먼 시넥(Simon Oliver Sinek)은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 Start with why?>, <인피니티 게임 : Infinite Game>과 같은 비즈니스 리더십에 대한 글과 강의로 TED에서만 5천8백만 뷰를 기록한 세계적인 라이프 코치다.
그는 지난 1월 15일 자신의 유튜브에 '5초의 법칙(5 second rule)'으로 유명한 전직 변호사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멜 로빈스(Melanie Lee Robbins)와 행동의 중요성에 대한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다.
멜 로빈스는 나이키의 모토인 "Just do it!"처럼 시작하기로 결심한 순간 "마음속으로 5초를 세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생각을 멈추고 당장 행동하라고 강조했고 사이먼 시넥도 즉각적인 행동을 통해 삶을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 외에도 수많은 뇌과학자, 심리학자, 상담사, 라이프 코치들이 공통적으로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복되는 삶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2분, 3분, 5분처럼 짧은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생각이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고 실천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99%가 실천하지 않을 때 실천한 1%가 삶을 바꾸고 소위 말하는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행동에 대한 고민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류 전체의 문제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행동에 대해 고민해 왔고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도 같은 고민을 했으며 결국 행동을 통해 삶을 바꿨다.
B.C.E 247년에 태어나 B.C.E 183~181년경에 사망한 카르타고의 장군이자 총사령관 한니발 바르카(Ἁννίϐας Βάρκας)는 B.C.E. 264년에 로마가 일으킨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겪은 치욕적인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서 B.C.E 218년에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다.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고민하던 한니발은 전투용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엄청난 전략을 선보였다. 모든 참모들이 코끼리는 산을 넘을 수 없고 알프스에는 더 이상 길이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한니발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길을 찾거나 혹은 길을 새로 만들거나."
(Aut viam inveniam aut faciam.)
현재 우리의 기준으로 봐도 코끼리가 알프스를 넘는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데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코끼리와 함께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은 비록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서 로마에 대패했지만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 산맥을 등반한 그의 도전 정신과 혁신적인 마인드는 아직까지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한니발은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거나 피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고 직접 행동하여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2,0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략의 신, 전쟁의 아버지라고 칭송받고 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역시 누구보다도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E 70~19)는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역사상 최고의 라틴어 문학가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도 B.C.E 29년부터 1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집필한 <아이네이드 : Aeneid>는 로마의 건국 신화 이야기를 다룬 대서사시로 유럽 문학의 기틀을 만든 고전 명작이다.
총 12권으로 구성된 아이네이드는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영웅 아이네아스(Aeneas)가 로마를 건국하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다. 신들의 운명에 따라 사랑, 이별, 배신 등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로마를 건국하는 사명을 수행한 아이네아스를 통해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찬양하여 로마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짙은 작품이다.
아이네아스는 운명이 가리키는 로마 건국을 위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를 건넜고 사랑하는 연인이자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Dido)의 곁을 떠나야 했으며 심지어 저승을 여행한 후에 도착한 거대한 왕국 라티움과 전쟁을 하다가 절친 팔라스(Pallas)까지 잃는 슬픔과 시련을 겪는다.
그는 연인과의 이별, 절친의 죽음, 지옥으로의 여행 등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언제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행동했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드에 이렇게 적었다.
"나아감으로써 힘을 얻는다."
(Vires acquirit eundo.)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드 : Aeneid>, Book IV, line 175, B.C.E 29~19
이처럼 삶을 바꾸는 행동에 대한 고민은 한니발과 베르길리우스로부터 현대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마침내 영화 <패터슨>을 통해서 우리에게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2016년에 개봉한 짐 자무쉬(Jim Jarmusch) 감독의 패터슨은 뉴저지 주 '패터슨(Paterson)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일상을 다룬 작품으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그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매일 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의 일상은 너무나 똑같이 반복되어서 어떤 특별한 모습도 찾을 수 없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혼자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고 버스를 운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촬영한 것 같은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패터슨의 일상은 단조로워서 <달과 6펜스>에서 말하고 있는 "불현듯 알 수 없는 불안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매일 꾸준히 시를 쓴다. 시동을 켜기 전의 좁은 운전석, 공원 벤치, 지하실 서재에서 하루종일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는다. 한 잔의 물, 식탁에 놓인 성냥,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처럼 지나치게 사소해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 힘든 일상적인 것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매일 조금씩 변하는 자신의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패터슨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단조로운 풍경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다시 말해서 패터슨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코스를 운전하고 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무미건조한 반복의 굴레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를 통해서 영화 속 어떤 인물보다도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인물이다.
(시라는 창작 행위 역시 반복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감독은 반복과 변화의 대비를 꽤 세밀하게 계산한 것 같다.)
이처럼 영화 <패터슨>은 세 가지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페터슨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권한다.
1.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
영화 초반부에 패터슨은 주방에 놓인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을 보며 사랑에 대한 시(love poem)를 쓴다. 성냥의 불꽃과 타오르는 초상을 보며 사랑의 뜨거움을 이야기하는 패터슨의 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성냥이 가진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이 장면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냥은 성냥 자체 만으로 어떤 일도 일으킬 수 없다. 갈색 마찰면에 성냥을 마찰시켜야 불이 붙는다. 성냥을 마찰시키기 전까지 성냥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실천하고 행동할 때 성냥에 불이 붙는 것처럼 비로소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목표가 성냥이라면 실천과 행동이 마찰면인 셈이다. 목표라는 성냥을 실천과 행동이라는 마찰면에 강하게 부딪혀야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평생 성냥갑 안에 갇힌 성냥에 지나지 않는다.
2. 발 사이즈와 운전의 상관관계
첫 번째 장면이 성냥을 통해 실천의 중요성, 행동의 철학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장면에서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라고 조언한다. 문득 로라는 패터슨의 신발을 보며 "발이 큰 게 버스 기사에게 장점일까?"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한다. 패터슨은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발 사이즈와 운전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발이 작다고 운전에 불리하고 발이 커서 운전에 유리하다는 연구 자료나 근거는 없다. 다시 말해서 로라는 운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발이 크면 큰 차를 쉽게 몰 것 같다는 일차원적이고 직관적인 로라의 이야기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우리의 모습과 같다. 행동과 실천이 정말 중요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패터슨은 해야 하는 일(버스 운전)과 하고 싶은 일(시를 쓰는 것)의 경계가 뚜렷하고 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지만 로라는 그와 다르게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는 성격으로 평생의 꿈이 컵케이크 사업이라며 컵케이크를 만들다가 며칠 뒤 갑자기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다고 몇 백 불이 되는 기타를 덜컥 주문하는 현실적인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낭만만 좇는다.
예를 들어서 커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생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카페를 창업하는 것은 꿈을 위한 도전이 아니다. 상권 분석, 시장 포화도, 객단가 계산, 차별화 전략과 마케팅 등 준비할 것들이 많다.
지난 1월 <상권장권>의 <카페/커피전문점의 폐업상황>이라는 네이버 프리미엄 컨텐츠를 보면 하루 평균 약 34개, 한 달에 약 1,041개의 카페가 문을 닫고 있으며 코로나 이후 새로 생긴 카페의 폐업 비율은 24%가 넘는다. 실천과 행동은 올바른 방향을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3. 두 승객의 대화
화요일에 버스에 탄 두 승객은 서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패터슨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둘은 도넛 가게, 바베큐 파티에서 얽힌 상대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나와 함께 재미를 보려고 했던 것"이라며 헤픈 상대였다고 말한다.
재밌는 부분은 모두 자기가 거절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인데 상대가 헤프거나 재미를 보려고 했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잘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합리화하고 있다.
심지어 둘에게 그런 상대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둘의 단순한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완전 허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연인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나 사실이야 어쨌든 둘은 버스 안에 앉아 시덥잖은 얘기나 하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의 대화처럼 핑계와 합리화가 우리의 실천과 행동을 막는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잘못하면 다칠 수 있어서 따뜻해지면 운동을 하겠다고 말하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공부하려고 했지만 늦잠 때문에 일정이 꼬여서 그냥 내일부터 하겠다고 할 일을 미루는 모습까지 모두 핑계와 합리화의 연속이다.
실천, 행동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지 말고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패터슨은 개성이 강한 주변 인물들에 비해 수동적이고 타인의 의견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있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매일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실천과 행동의 모범적인 아이콘이다. 영화 안에서 계속 등장하는 반복의 의미, 반복의 중요성은 실천과 행동을 통해 완성된다.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불꽃도 일으킬 수 없는 성냥, 발이 크면 운전을 잘할 것 같다는 자기 착오,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 문제가 있어서 관계가 끝났다는 핑계와 합리화의 연속에서 벗어나려면 패터슨처럼 자신만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서 행동해야 한다. 실천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삶이 되는 법이다. 한니발과 베르길리우스, 패터슨이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자. 그래야 삶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