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 안내서 #5

정서적 탈진 상태에서 들려오는 지나친 친절에 대하여

by 담아


정서가 바닥났다.

말을 붙이지 않아도 짜증이 나고,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롭고,

무언가를 씹으면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날.


조용한 데를 찾아 나섰다.

몸 하나 뉘일 수 있을 만큼만,

머릿속이 비워질 수 있을 만큼만 바랐다.


첫 장소에선 공사 소음이 울렸다.

두 번째 장소에선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밝은 합창이 들렸다.

누군가는 그것을 평온이라 부르겠지만,

그날의 나는 그조차 소음으로 느껴졌다.


세상이 일부러 날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위로도, 방해도 아닌 그 묘한 감정.

그 어떤 것도 나를 생각하지 않는데

왜 모든 것이 내 신경을 긁고 지나가는가.


누구는 말한다.

지금 당신은 단련되는 중이라고.

그 말이 제일 화난다.

나는 지금 그 어떤 교훈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저 나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다시 움직일 에너지도, 기대도 없다.

이런 날은 그냥 감각을 접고 앉아

세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정서가 탈진한 날엔, 친절도 때로는 피로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버틴다.

무너진 게 아니라, 아직도 안 무너졌다고—

그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