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한 여인이 주저앉아 흐느끼며 물었다.
"부디 알려주세요. 나는 누구입니까?"
그러자 아낙은 아무 말 없이 흐느껴 우는 여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5초의 정적이 흐른 후, 아낙은 온화한 음성으로 답을 했다.
"너는 아무도 아닌 너 자신이다."
"너는 그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은, 너 자신일 뿐이다."
그 말을 듣고 난 여인은 가만히 자신의 존재를 보았다.
아무도 아닌 채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요함이 여인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당신은 '너는 그 무엇이 아니어도 괜찮다.'이 한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그 무엇이 되지 못할까 봐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말이라 그렇게 느껴질 뿐이니 개의치 말라. 그저 너무 애쓰지 않고 무심한 태도로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될 터이니 말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초연결 시대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놀라운 기술의 진보 앞에 더없이 초라한 개인'이 되어가고 있다. 일상을 장악한 디지털 가상세계 속 방대한 정보의 바다를 망망대해 누리는 듯 싶지만 실상 바다 위의 내 위치가 정확히 어느 좌표에 위치하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다. 또한 내가 어느 곳을 목적지로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쉽사리 결정 내릴 수가 없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화려하게 변해가고 있고 앞다투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익혀 뽐내는 사람들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영영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시대에 뒤처지게 될까 봐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지구별을 살아가는 많고 많은 사람들의 속사정일 게다.
물론 나 역시도 같은 심정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기를 바란다. 혹여나 지금까지 내가 나열한 위의 이야기들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당신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대로 자기 확신을 유지하며 진보하는 디지털 가상세계 안에서 당신만의 항해를 진행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다만 혹시나 그렇게 나아가다가, '길을 잃은 것 같거든' 그때 한번 이 글을 찾아주길 바란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어린시절 '조선시대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갑갑하고 억울한 일이 많았을까 싶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조선시대에 태어난다는 상상은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중년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관한 불안에 사로잡히는 '생각의 감옥'에 빠지는 횟수가 훨씬 덜했을 것 같긴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중년의 동지들도 나와 비슷하게, 미래에 관한 막연한 불안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평화롭게 누리지 못한다.
이 책은 그러한 나와 내 동지들을 위한 글이다. 이 책을 통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그림 속 연인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아낙의 손길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차피 우리 모두의 인생은 그저 한 편의 드라마로서 고유한 색깔과 결을 띄고 있는 자신의 영혼이 펼쳐낸 '희로애락'이 뒤엉킨 한 편의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강도 건너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용감한 영혼'이니 말이다.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면, 그다지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게 바로 인생이구나 싶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