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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Mar 31. 2024

그녀의 불안은 우리 모두의 잠재적 불안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2024년 3월 31일, 그녀는 오늘도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켜두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은 일정표에 'to do list'로 정리되어 있다.


하루 24시간 중 취침 시간 8시간과 근무 시간 9시간을 빼면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은 거의 7시간뿐이다. 사실 출퇴근을 위한 시간과 집안일을 하는 시간 등을 제하면 5시간 남짓 시간이 덩그러니 남겨질 뿐이다.


남겨진 시간은 남은 미래를 위해 좀 더 생산적으로 잘 활용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이 그녀의 마음속에 늘 잠재하고 있지만 그럴만한 힘이 남겨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이미 (그녀 자신의 생산성과 직접 직결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성실한 태도로 직장에 가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신의 엄청난 에너지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저녁에 돌아와 샤워를 집 정리를 한 후 소파에 누운 그녀는 잠시만 스스로에게 쉼의 시간을 허락해 주기로 했다. 사실 샤워와 집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 남겨진 건 겨우 4시간 남짓일 뿐이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휴식과 자유'에 관한 갈망만 가득하다. 사실 그녀에게 온전한 휴식을 허락하는 것은 오직 집 안의 푹신한 소파뿐인 것 같기도 하다.


소파 위에 잠시 눈을 감았던 그녀는 무심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뒤척여 소파 팔걸이 위에 놓여있던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아낸다. 그리고 아무런 목적과 의도가 없이 그저 늘 그래왔던 당연한 습관처럼 각종 SNS 앱을 터치한다. 핸드폰 위에 펼쳐지는 '멀어진 지인'과 '낯선 타인'들의  사진과 영상을 잠자코 바라보면서, 그녀는 '나와는 다른 그들의 행복한 삶'추측해 본다. 


 인스타에 친구가 올려둔 사진 몇 장을 보던 그녀는 곧장 부러운 감정과 이유 모를 시기심에 사로잡힌다.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 듯 보이는 그  친구는 여전히 사진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뽐내고 있다. 그녀의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 얼굴이 참으로 밝아 보인다.


친구의 아이들 표정을 보니 문득 지난주 아들이 저녁을 먹다가 꺼냈던 말이 떠올라 슬퍼진다.


아들은 코로나가 끝나서 그런지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쯤 해외여행에 갈 거냐고 묻던 아들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만 올라와 울적해진다.


요즘은 재미있는 공중파 채널도 즐겨볼 일이 거의 없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가며 재밌는 거 찾는 일도 참 번거롭다.


유튜브 채널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뭐 재밌는 거 없나 손가락 낚시를 해본다.


지친 몸을 소파 위에 눕혀두고, 오늘 하루 고단했던 자신에게 잠시나마 '큰돈 들지 않는 부담 없는 재미'를 선물해주고 싶을 뿐이다.


잠시 그렇게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훌쩍 2시간 흘렀다. 벌써 늦은 밤이다.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한늦은 밤중 오랜만에 그녀의 대학 동기 혜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라고 안부를 묻던 친구  혜진이는 그녀에게 '우리도 이제 늙나 봐.'라며 한 밤중의 설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친구 혜진이는 요즘 들어 가족 일과 직장의 상사 스트레스가 겹친 탓에 '이명과 허리 디스크'가 동시에 발병했다며 슬퍼했다. 


나이 들며 아프니 서럽기만 하다고 했다. 혜진이와 그렇게 그동안 서로 나누지 못했던 고단한 현대인의 일상과 해프닝을 통화로 나누다 보니 벌써 40분이 지났다.


전화를 끊고서 그녀는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이제는 다이어트가 아닌 생존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나이지!'라고 자기 자신을 동기부여 시킨다.


그녀는 이렇게 누워만 있을 때가 아니라며 몸을 일으켜 서재 방구석에 접혀있던 홈트레이닝 전용 매트를 꺼내어 땅바닥에 펼쳤다. 


그리고는 종종 즐겨 찾던 유명 홈트 채널을 찾아 TV 모니터에 큼직하게 띄웠다. 모니터 앞쪽 매트 위에 자리를 잡고, 틀어둔 홈트 영상을 열심히 뒤쫓아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오랜만의 운동으로 옆구리와 허벅지 근육에 통증을 느낀다.


 운동하는 시간 동안 매우 신이 나거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이게 '가족도 회사도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이구나 싶다. 그것 만으로도 그녀는 뿌듯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하다.


잠깐 30분 생존 운동을 하고 다시 얼른 가벼운 샤워를 했다. 이제 거의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어쩜 이렇게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가는지 때로는 황당할 만큼 삶이 허무하단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잠자리에 들기 전, 거울 앞에서 얼굴 위 수분크림을 발라주며 잔주름이 늘어감에 세월의 흔적을 다시금 느껴본다.


그러던 그녀는 나이와 세월의 흔적 따위는 잊고 싶다는 마냥, 빨리 잠이나 청하자며 침대로 향했다.


 다가오는 내일, 피곤한 하루를 보내지 않으려면 빨리 잠에 들어야 하는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잠시 유튜브 앱을 켜서 스크롤바를 아래로 내려가며 잠들지 않는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아까운 시간'을 채워보려 애쓴다.


그러던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튜브 채널 추천에 얼마 전까지 즐겨보던 '부자 되기 동기부여' 채널 영사의 몇몇 썸네일에 적힌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띈 것이다.


 '하는 일마다 대박 나는 비법'


'이 영상, 반복해서 보다 보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 때는 채널 주인장의 말솜씨가 참으로 설득력 있는 것 같아 그에게 부자가 된 비법을 좀 배워보고 싶어 열심히 즐겨보던 그 영상의 썸네일 문구들이  그날따라 그저 이메일 스팸함을 열어본 것처럼 하찮고 지겹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자극적인 문구로 구독자를 모아, 자신의 팬덤을 형성시킨 후 자신의 본격적 수익화를 위한 잠재적 고객을 늘려나가려는 채널장의 의도를 알아버린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참 멋있어 보이던 '부자 유튜버'가 어느새 '사기꾼'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결코 다른 누군가의 꾐에 넘어가 어리석게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소비하지 않겠노라 스스로에게 굳센 다짐을 해본다.


그렇게 입술을 야무지게 '앙' 다물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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