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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Apr 07. 2024

당신이 불안해도 괜찮은 이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천사는 눈을 감은 채로 불안한 그녀의 자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눈을 감아도 무엇이든 훤히 볼 수 능력은 천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니, 마음을 고요히 만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눈을 지그시 감아둔 것뿐이었다. 


천사의 둥글고 커다란 마음에 떠오른 그녀는 천사의 일부였다. 

그녀는 지구상에 태어나 스스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여러 지구 생명체 중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바라왔었는데 그 이유는 오직 '생명의 의미'를 깨우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명' 즉 '살아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 이번 생 그녀에게 주어진 삶의 과업이었다. 


그녀가 지구상에 '태어나기'를 선택하자 동시에 '죽기'도 한쌍으로 그녀의 선택에 다가와한 몸이 되었다.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지구 생명체의 숙명이라고 했다. 태어나기만 하고 죽지 않으면 절대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녀는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의 '살아있음' 체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다. 아니 '삶의 의미'를 온몸의 신체 감각으로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이 지구상에 태어나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 하루하루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역할을 바쁘게 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게 좀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는커녕 그녀의 머릿속은 늘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기 십상이었다. 


그녀가 살아가는 사회문화적 맥락은 인간 각 개개인에게 참으로 많은 자유와 권한을 허용하는 듯싶었다.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무한한 삶의 기회가 펼쳐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신분제 사회와는 다르게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스스로를 부단히 갈고닦으며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학생으로서 살아가는 학창기 시절에는 학업능력을 시험결과로써 입증해내야만 했고 중 장년으로서 살아가는 기간 동안은 생존능력을 연봉실적으로 입증해내야만 하는 듯싶었다. 거기에 추가로 스스로의 건강을 관리하는 자기 관리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추가적으로 그녀가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외모를 멋스럽게 가꾸는 능력'까지도 나이를 불문하고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적 풍토를 보이는 듯싶었다.


그녀는 인간으로 살아가기는 동안 '자신의 능력 계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늘 불안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다가 성적이 생각보다 높게 나오지 않을 때는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나보다 덜 노력하면서도 더 높은 성적을 받는 것 같은 친구들을 보게 될 때는 불안을 넘어선 공포를 느꼈다. 


자신의 머리가 좋지 않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능력을 갖출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공부만 하는 게 너무 갑갑해서 주말에 가끔 친구와 만나 두세 시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천사는 하늘 위에서 멀찌감치 그녀를 지켜보며 말했다. 


 얘야, 괜찮아. 너에게는 친구들과는 다른 너만을 위한 특별한 삶의 장면이 펼쳐질 거야. 너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천사는 그녀가 너무 쉽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또다시 괴로움을 극복하고 일어나 힘을 낼 수 있기를 믿어주기로 그리고 기다려주기로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엄청난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이십 대 초반 소중한 청춘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불태운 그녀는 다행히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아줄법한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신입사원으로서 신선한 포부를 지니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그녀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업무를 진행하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와 의견들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상급자 상사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한다는 건 굉장한 대범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재빠르게 '상사의 요구'를 눈치껏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최대한 빨리 만들어내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열심히 익혀두었던 의사소통 스킬과 토의토론 기법들은 회사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다. 어쨌건 최선을 다해 자기 역할을 해나가던 그녀는 자신의 노력이 참으로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 눈에는 게으르고 무능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입사 동기 A가 자신보다 더 먼저 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입사 동기 B는 자신이 '카더라 통신'으로 입수한 소식이라며 A의 빠른 승진 사유가 바로 고위급 윗선 상사와의 특별한 인맥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다지 행복감을 누릴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이는 대기업 회사생활을 5년 이상 지속해 나갔다. 가끔 동기들과 저녁 술자리에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함께 나누고 풀어보기도 했다. 모두들 "월급 받으려고 일하는 거지" "대부분 이 시대 사람들은 뭐 월급의 노예로 사는 거지!" "인생 특별한 거 있냐?"라고 자조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이대로 대기업 회사원의 삶을 살아가다가는 자신만의 '특별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걸 직감했다. 하지만 특별히 다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두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들 했다. 대안도 없이 회사를 나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인 것만 같았다. 



그때 천사는 하늘 위에서 멀찌감치 그녀를 지켜보며 말했다. 


얘야, 괜찮아.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것들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을 경험하고 난 후에 진짜 의미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는 거란다.

그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서 너는 지금의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을 감당해내고 있는 거야. 잘 해내고 있다. 대견해! 



그렇게 5년 이상 회사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요즘 이유 모를 심각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앞으로의 인생 장기 플랜을 위해 투자와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그 우울감이 심해졌다. 그녀는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아주 짧은 막간의 저녁 시간을 활용해서 각종 투자 관련 책과 영상을 접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떠오르는 개인투자 성공자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격한 자괴감을 느꼈던 것이다.


'저들은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저렇게 열심히 투자금을 돌려 자산을 불려 갔는데, 나는 그동안 허송세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온 것인가?' 그녀는 또다시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그녀는 회사 생활 5년을 지속했음에도 자신의 통장 계좌에 자신을 뿌듯하게 해 줄 법한 단위의 금액 액수가 박혀있지 않음에 서글프고 불안했다. 그 사이 함께 대기업에 입사했던 여자 동기 일부는 화려한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쿨하게 직정을 떠났고 또 다른 동기 누군가는 회사 생활의 결말이 보인다며 새로운 삶을 찾으러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가끔 SNS로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며 '나만 성장 없이 정체된 시간' 안에 가둬진 듯 슬퍼졌다. 



그때 천사는 하늘 위에서 멀찌감치 그녀를 지켜보며 말했다. 


얘야, 괜찮아.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타인들의 삶에도 네가 모르는 드러나지 않은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어. 아픔과 고통은 절대 드러나 보이지 않을 뿐이야.

너무 부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그들도 살다가 괴로울 때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면을 너에게서 발견하고 너를 부러워하고 있어.



그녀는 회사 생활 5년을 지내온 후 최근래 들어 자신이 '번아웃'인지 '슬럼프'인지 모를 정체기에 머물러 있음을 알아차렸다. 재테크 공부를 하겠다고 퇴근 후 각종 영상을 찾아보고 여유자금 일부 투자를 해봤지만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고 주 3회 다니던 필라테스 운동을 그만두어서 그런지 건강검진 결과도 2년 전보다 몇몇 개 항목 수치가 나빠져 있었다.  


문득 그녀는 자신의 불안이 너무나 막연한 것이며 그것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도 모르게 타인과 자꾸 자기 모습을 비교하며 불안한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 영상물을 모두 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자기를 비교하며 지내봤자 자기 삶이 더 나아질 게 하나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지고 있는 자기 모습이 이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를 지켜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겨가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재테크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보내던 시간들을 다른 시간들로 바꿔서 채워보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면 집 근처 조깅로를 찾아 저녁 달리기를 해본다. 때로는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읽으며 따뜻한 차를 마신다. 가끔씩은 나만을 위해 예쁜 일기장에 끄적이며 좋은 문구를 필사해 본다. 



그때 천사는 하늘 위에서 멀찌감치 그녀를 지켜보며 말했다. 


그래, 얘야. 너무 기특하게 잘 깨우쳐가고 있구나. 지금 네가 시도하는 그런 아주 작은 것들이 바로 너의 삶을 생기 있게 해주는 근원이란다.
살이 있고 숨 쉬게 해주는 힘, 즉 생명의 의미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란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네가 스스로의 존재를 알아차려주며 아껴주는 그 마음 안에서 발견되는 거란다. 


그녀는 매일 아침과 저녁, 하루를 시작할 때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 매 순간 스스로에게 대화를 건네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 하루가 고단했으면 자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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