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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Apr 21. 2024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익숙하게 떠올려 볼 법한 드라마 사극의

익숙한 대사 하나가 있다.  

"니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대사 말이다.

불호령 같은 말이 떨이 지고 난 후, 사극의 한 장면 속에서 죄인은 세찬 곤장 세례를 맞는다.


우리 모두는 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위의 사극 장면 속 주인공이 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기가 어렵다.


일부러 죄인이 되기를 의도한 바는 없을지라도, 무심코 자신이 내뱉었던 말과 행동이 사회적 규범이나 관례에서 벗어난 듯 오해와 물의를 일으키며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 즉 죄인'이 된 듯 여겨진 경험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쯤은 겪어보았을 법하다.


자기 자신의 경험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내 주변인들이 생각보다 억울할 듯싶은 사연으로 심각한 곤장세례를 맞고는 괴로워 울부짖는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한다.


인간의 심리는 사실 사실 죄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죄를 짓고 나서 받게 될 벌에 관한 두려움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 이러한 두려움은 무의식적으로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가 종종 죄를 저질러 놓고도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어 치치 못하는 듯 보이는 사람을 보거나 사회적으로 응당 벌 받아 마땅하나 운 좋게 벌 받는 상황을 요리조리 회피해 나가는 듯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때면 나라도 그 죄인을 붙잡아 매섭게 곤장을 내려 쳐주고만 싶은 욕구가 솟아오를 거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듯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 당신의 양심은 혼잣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마땅해."라고 말이다.


당신은 지금껏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곤장 세례를 맞는 것처럼 매섭게 아프고 서글퍼졌던 과거 기억이 있는가?


나도 모르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이 나 아닌 타인의 눈에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판단되어 내가 속한 사회적 집단 내에서 소소한 물의를 일으키며 '죄인'이 된 듯한 비난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가?


내 마음속 의도가 무엇이었던지 상관없이 (때로는 선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이나 행동이었을지라도) 우리는 종종 타인이나 세상으로부터 심각한 오해를 받고 사회적 지탄을 받는 등 '갑작스러운 불운'과도 같은 일을 감당해 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럴 때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이런 혼잣말을 한다.

"내가 도대체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전생의 유무에 관해 깊이 사유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인생에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고난이 닥쳐오게 되면 무심코 그렇게 '과거 전생의 업식이 현재의 자기 삶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원초적 신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고난을 감내해야만 하는 애처로운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작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응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순간적으로 '전생의 기억'까지 끄집어내서 자기 자신을 '벌 받고 있는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가둬놓고야 만다.


이런 두려움은 심지어 자기 자신이 무심코 했던 말과 행동이 살다가 또다시 어떤 강력한 벌 받음의 고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는 '인지 왜곡'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는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하고 행동하는 게 전부 다 두려운 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어보고 넘어가야만 하는 진실이 하나 있다.

사람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듯이, 양심의 소리 즉 죄의식에 관한 민감도도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너무나 많이 다르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양심과 죄의식의 발현 수준이 너무나 달라서 똑같은 상황에서도 A라는 사람은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B라는 사람은 전혀 심리적 불편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또 주목할만한 점은 죄책감에 쉽게 시달리는 사람들이야 말로 매우 양심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소위말해 '이타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정작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고 무자비하게 타인을 속이거나 편법 행위를 일삼는 이들에게서야 말로 죄책감 같은 걸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났을 법한 도덕적 양심의 소리가 그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마음의 소리로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양심의 가책', '죄의식' 등은 법과 제도처럼 보편적 사회제도로서 만인에게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필요 이상의 과도한 죄의식을 느끼며 스스로의 마음에 괴로움을 쌓고 또 어떤 이들은 지나친 합리화를 하며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여 죄의식을 느낄 줄 모른다.


죄의식이 많이 발달된 사람들은 "~게 하면 나빠." "~사람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이야." "~하면 벌 받아."라는 말들에 반응하는 감각이 좀 더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합리화를 잘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마음속으로 혼자 몰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사람은 다 자기 좋은 대로 실속 차리며 사는 거지'라며 코웃음을 칠 테고 말이다.


어찌했건 우리는 삶의 장면 속 어떠한 장면이 결코 특정한 개인 한 명이 품었던 '의지나 말과 행동' 하나 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걸 주목해주었으면 한다. 우리 인간은 분명 거대한 자연계에 속한 하나의 작은 생명체일 뿐이다.


거대한 자연계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특정한 주변 영역에 그 어떤 일부의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개인으로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삶의 장면을  내 뜻대로 백 프로 완백하게 통제해낼 수 있는 권한은 부여받지 못했다.


흙 속의 씨앗이 아무리 땅을 뚫고 나가 새싹으로 피어나고 싶다고 염원한들 새싹이 피어나기 위해 적당한 환경적 맥락이 갖춰져야만 그것이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당신이 어떤 의도를 품고 노력을 한들 결실을 맺으려면 그에 적합한 시의적절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 잎사귀가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나뭇잎이 스스로 땅으로 떨어졌다.'라고 인식하게 되지만 나뭇잎이 떨어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작용이 있었다.


그러니 내 삶의 장면 앞에 전혀 내 뜻과는 무관하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사건이 펼쳐졌다고 할지라도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좀 더 노력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세상 밖 타인들에게 내 모습이 벌 받는 죄인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모두 다 우리 뇌 속의 생각 회로, 전기 신호 뉴런이 만들어내는 초자아(super ego)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니 말이다.


당신이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신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의 속삭임들이 '진짜(real)'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이 유일하게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신을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당신이 '내 잘못'이라고 믿고 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당신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언젠가는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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