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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Apr 14. 2024

과거의 상처가 발목을 붙잡을 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당신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세상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특별한 비전과 구체적인 방향성을 늘 생생하게 자기 마음에 그려낸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굉장히 자기 자신의 능력, 가치, 가능성에 관한 '자기 확신'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자기 확신'이 높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여 변화를 주도해 나아가는 도전에 큰 주저함이 없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 보는 게 참 낯설고 어려운 과정으로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지금 당장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도 벅차고 힘겨울 뿐이다.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낸다는 건 그저 '정신적 사치' 혹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로 느껴질 수조차 있다. 


이처럼 '자기 확신'이 높아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두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는 삶의 행복감에 있어서도 굉장히 큰 차이가 생겨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삶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 삶에 대한 주체성을 스스로 인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훨씬 더 자주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내 삶은 나의 의지대로 꾸려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들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축복과도 같은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누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인지 쉽사리 그려지지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은 삶의 장면 속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에게 나 자신은 그저 정해진 운명과 외부 환경에 철저하게 가두어진 채로,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 위에 둥둥 떠다니며 발버둥 치는 작은 미물일 뿐이다. 


자,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내가 감히 추측건대, 이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인구수의 70프로 이상은 이와 같은 질문에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할 것 같다. 


"인생은 그저 정해진 운명대로 흘러갈 뿐입니다. 저는 그 삶의 굴레 속에서 나약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요." 하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해서 추측건대, 위와 같이 대답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과거의 상처'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가 가두어져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조차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과거에 상처받았던 경험 속의 자기 모습이 심장에 뿌리 깊게 박혀서 혹여나 또 비슷한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울까 봐 두려워 무엇이든 '주저함'이 많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만약 내가 스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조차 쉽사리 그려지지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자기 심장에 뿌리 박힌 상처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발견해내야만 할 것이다.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인가? 당신의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알아주어야만 당신의 삶은 당신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당신은 삶 속에 더 많은 자유로움을 누릴 수가 있게 될 거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준 사람은 없어도 상처를 받는 사람은 생긴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나 상사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 한마디가 심장을 찌르듯 아프게만 느껴진 적이 있지 않은가? 말을 뱉은 사람은 상처 줄 의도가 전혀 없었을지라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그렇게 심장을 도려내듯 괴로운 상처를 받고야 만다. 그게 바로 우리네 인간사 아니겠는가?


실제로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욱' 하고 올라온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내 심장 속 가시처럼 박혀버린 뿌리 깊은 과거의 상처를 알아차리게 해 줄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감정의 트리거가 되어준 '타인의 말'을 힌트로 삼아, 나의 무의식 속 저편에 가리어진 상처받았던 과거의 경험을 발견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과거의 장면 속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나(내면아이)를 꼭 진심으로 위로하며 안아주어야만 한다. "너 정말 많이 속상했겠다." "너 정말 많이 아팠겠다." 하며 '과거의 나'에게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다정한 언어로 말을 건네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서 다시는 또 아프기 싫다는 이유로 외면해버기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는 연습을 하면 당신은 나도 모르는 사이 심장에 뿌리 박혔던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할 거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당신의 마음에 그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거두어지며 앞으로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용기가 샘솟을 거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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