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갤러리 한점에서 그림 수업을 듣는다. 오늘 주제는 '선물하고 싶은 그림'이다. 마침 근처 아트필드에서 전시 중인 백중기 작가의 <저녁 눈>을 택했다.
* 유년 시절의 나 혹은 엄마에게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함박눈이 쌓인다. 아득한 기억을 불러오는 오래 된, 그러나 낯익은 풍경이다. 저런 집에 살던 시절 엄마는 젊었고, 나는 어렸다. 낡은 부엌문을 삐걱 열면 밥을 하는 가마솥과 국을 끓이는 양은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불을 지피는 엄마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기억은 포근하다. 그 시절 엄마들이 대개 그렇듯 좋은 것들은 식구들 먹이고 자신은 늘 뒷전이었다. 충청도 산골이라 싱싱한 해산물은 구경도 못하고 기껏해야 간재미 고등어를 먹는 정도였다. 몸통은 식구들 먹일 찌개를 끓이고 엄마의 몫인 대가리는 석쇠에 올려 구웠다. 구우면 바삭바삭 뼈까지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앙상한 대가리에선 자글자글 기름이 흘러나와 고소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 했다. 늘 부뚜막에 밥그릇을 놓고 들며날며 한술씩 뜨는 엄마 곁에서 살도 없는 대가리살을 제비새끼마냥 날름날름 맛나게도 받아먹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먹을 그나마의 몫을 내가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푹푹 쌓이는 그림 속 풍경 속에서는 왠지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나는 듯하다. 엄마에게 고등어 한마리를 통채로 구워주어도 시원찮지만 이제는 치매에 거동조차 못하는 처지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자식은 그 살을 뜯어먹고 크는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