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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Oct 29. 2020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이들의 표정이 보였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거나 듣는 일이 많아졌다. 화상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은 노트북에 옵션으로 깔려있는 기능 덕택에 뽀얗고 발그레한 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를 칙칙함 때문에 항상 당당하지 못했다. 흐릿해진 눈썹 때문일까? 며칠 전 친구의 짙고 자연스러운 눈썹이 떠올랐고 그 친구에게 물어 반영구 눈썹 문신을 하러 갔다.


 "눈썹 모양은 보통 어떻게 하세요?"

 "앞부분에는 눈썹 숱이 별로 없는 편이네요. 그쪽은 어색하지 않게 조금 더 채워 넣을까요?"

 "원래 오른쪽으로 표정을 더 많이 지으시나 봐요? 대칭으로 눈썹을 그려도 대칭이 아니게 보일 수 있는데 조금 내려서 그릴까요?"

 "얼굴 톤이 어두우니 눈썹 색은 조금 짙게 하는 것이 좋겠죠?"


눈썹 문신을 하기 전 참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모 하나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가요? 알아서 잘해주세요."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시술이 끝났다. 세 달 뒤 리터치를 하러 오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어떤 쪽으로 수정을 하면 좋을지, 어느 부분이 불편했는지 등 살펴보고 꼭 의견을 전해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한결 또렷해진 눈썹과 마주했다. 그 뒤 눈썹의 상태를 살피느라 거울 속의 나를 자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질문을 들으며 내가 왜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는지에 대한 답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내 얼굴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다 보니 퇴근길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가장의 지친 어깨만큼이나 내 입꼬리는 축 쳐져 있었다. 마스크만 꼼꼼하게 쓰고 나다닌 탓인지 이마와 턱의 색은 한 사람의 피부색이라 보기 힘들었다. 쭉 찢어져 올라가 싸나운 인상을 준다고 생각했던 눈은 어느새 1cm 정도는 처져 내려온 듯 보이고 눈의 흰자는 노리끼리했다.


  내 얼굴은 나를 대표한다. 하지만 내 얼굴을 가장 적게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평소 내 얼굴에 묻은 김가루 하나를 발견하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내 주변 사람이다. 가까운 주변 사람이 아니더라도 길에서 슬쩍 지나치는 사람들 보다도 나는 내 얼굴을 적게 본다. 요즘 나의 얼굴을 가장 많이 마주하고 있었던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다. 거울을 내내 쳐다보고 있다 보니 거울 속에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비쳤다. 밝게 웃고 있어야 할 아이들의 얼굴 속에서도 내 모습이 발견되었다. 짜증과 불만이 가득 뒤섞인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내 표정을 닮아가고 있었다.


 어느 책에서 본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뇌의 신경세포 중에 거울신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감각기관 특히 시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마치 거울처럼 비춘다는 이론이다. 이 때문에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까지 마치 자신이 한 것과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아이들의 거울신경에 자극을 주었다면 우리 아이들 또한 매일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모방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며 내 얼굴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표정에 대한 책임까지 덤으로 지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로. 거울 속에 있는 나를 향해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말이다. 젊을 적 불뚝 솟아 불만이었던 광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무게에 눌려 내려왔는지 언제부터 쳐져있던 입꼬리는 좀처럼 자연스럽게 올라가지 않았다. 5초 만에 경련이 일어났다. 눈가에는 세 줄의 주름이 진하게 잡혔다. 그래도 구부려지지 않는 허리를 억지로 숙여 발끝에 손 끝을 갔다 대듯 볼 근육을 꽉 꼬집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거울 속 억지웃음을 짓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피식 진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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