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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an 14. 2021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앞에는 놀이터 주변을 매일 도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아마 내가 남편과 퇴근하며 주차를 할 때도 마주치곤 했으니 2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항상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열심히 걸으신다. 다리는 150도 정도 굽어 있고, 그렇다보니 허리와 등이 뒤로 젖혀져 그리 안정적인 자세는 아니다. 그리고 손에는 항상 묵주가 들려 있다. 우리 집 앞 놀이터는 주차장과 차가 다니는 길이 둘러 있는데 한 바퀴를 걸으면 약 400m쯤 될까싶다.    

  

 몇 바퀴를 도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 두 번은 나와서 걸으시는 듯하다.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을 내시는지도 모르지만 한결같이 걸으신다. 맞은 편 동에 사시는 듯한데, 항상 우리 집 공동현관 앞에 서서 주차금지 표지판을 잡고 반대쪽 다리를 들어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스트레칭을 하신다. 그리고 또 반 바퀴를 걸어 맞은 편 동의 공동현관 앞에서 또 똑같은 동작을 하신다. 한 바퀴 걸으실 때마다 두 번을 쉬어 스트레칭을 하신다.     

 

 남편과 함께 그 할머니를 만날 때면 정말 열심히 걸으신다고 감탄사를 날린다. 남편이 그 할머니를 만날 때는 보통 주말이다. 주말에 함께 마트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치곤 한다. 그런걸 보면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일 걸으시는 듯하다. 그 할머니를 알지만 단 한 번도 아는 체를 하거나 인사를 나눠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는 할머니다.    

 

 그랬던 할머니가 요 며칠 보이지 않는다. 엄마도 그 할머니가 요새 통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신다. 나는 지난 주 폭설과 한파 때문에 나오지 못 하신 게 아닐까라고 했다. 엄마는 나보다 그 할머니를 더 유심히 지켜봐왔는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지하주차장이라도 돌곤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나오시질 않는다고... 너무 추워서가 아닐까?     


 어제부터 날이 풀려 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녹고 아파트 벽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진다. 더 이상 세탁기를 돌리지 말라는 방송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주방에서 밥을 지을 때면 나도 모르게 밖을 내다보게 된다. 아는 할머니도 아니고 동네의 그 누군가와도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 보지 않았기에 안부를 물어볼 수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걸으셨는데 걱정이 된다.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걸으셨는지도 궁금하고, 매일 묵주 기도를 하며 무엇을 기도하셨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그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하다.     


 어느 화창한 날 다시 할머니가 나와 걷고 계시는 것을 보면 안도의 숨을 내쉴 것 같지만 그렇다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건네진 않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운동을 응원한다고 속으로 파이팅을 외쳐드릴 거다.      


 작년 초 무릎 수술을 하시고 우리 엄마 또한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평균 나이에 비하면) 수술을 한 엄마는 아파트 언덕을 내려가 천변을 한 시간씩 걷곤 했다. 물론 길이 미끄러워 요새는 통 나가지 못한다. 건강을 잃고 나야 비로소 남의 처지도 보이고 나에게 지킬 것이 목숨뿐만 아니라 무릎도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엄마와 체형과 걷는 자세나 습관이 비슷한 나에게 항상 무릎 관리를 잘 하라고 조언(잔소리) 하신다. 아직 나는 괜찮다고 엄마나 운동 열심히 하고 새로 끼워 넣은 무릎 아껴서 잘 쓰시라고 반사를 날린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그냥 단순히 걷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더 유지하기 위해 동네를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당장 다른 것들이 급하니 그런 미래에 대한 생각은 툭 던져버린다.  


 

땅끄부부

  

 어제부터 나는 밖에 못 나가는 엄마를 위해 거실 TV로 홈트 영상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둘이 약 30분 정도를 가볍게 걸으며 할 수 있는 운동을 열심히 따라했다. 엄마는 어렵게 바꿔 낀 무릎을 위해서, 나는 집콕 생활이 길어지며 앞자리수가 바뀌어버린 몸무게를 줄여보기 위해서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은 다르지만 결국 몇 십 년을 함께 할 나의 몸뚱이를 위한 것이니 그리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밖에 쌓인 눈이 다 녹고 조금 가벼운 차림으로 엄마와 산책을 나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다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주말 남편과 장을 봐오며 앞서 걷고 있는 할머니를 피해 주차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같은 마음을 나눌 거다.     


“어! 저 할머니 다시 나와서 걸으시네. 뭔 일 있으신가. 했는데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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