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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Jun 15. 2022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

 친정 부모님이 아빠의 고향에 작은 시골집을 마련하셨다. 우리와 함께 산지 딱 10년 만이다. 10년 전 일하는 나를 대신해서 큰 아이를 봐주시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엄마는 "딱 10년만 봐줄게"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때 맞춰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셨다. 

 우리 집에 거처를 두고 시골집을 별장삼아 왔다 갔다 하실 거라던 남편의 생각과는 달리 엄마, 아빠는 완전 시골집에 정착하셨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남편은 장인, 장모님의 부재를 허전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의 새 보금자리로 놀러 갔다. 결혼 후 처음 친정이라는 곳을 들르는 기분이었다. 아직 수리할 곳이 많지만 앞이 확 트인 작은 언덕 위의 집은 해가 종일 잘 들었다. 직접 캐오신 나물에 아직 갖춰지지 않은 살림으로 엉성하게 밥상이 차려졌다. 확 트인 벌판과 산을 바라보며 먹는 엄마가 차려준 밥은 꿀맛이었다. 10년 동안 계속 먹어 온 엄마의 밥인데 밥 알 하나하나에 편안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자고 우리는 엄마, 아빠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 잘 있어"라고 인사를 하는데, 양손에 짐을 잔뜩 든 남편이 장인, 장모님을 향하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두 분의 표정이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익히 들어온 말이라 웃음 띈 얼굴로 차에 탔다. 남편은 시댁에 들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꼭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제 결혼을 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데 왜 다녀오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인사를 10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는 남편의 뜻을 나는 안다. 여기도 집, 저기도 집 우리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집이 몇 개 있다. 태어나서 2살까지 시댁에서 살았단 우리 큰 애도 어릴 적에는 항상 집이 두 개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 집, 할머니 할아버지 집. 이제 친정집까지 우리에게 집은 세 개다.


 친정 부모님이 계신 집을 떠나오며 남편이 건네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에 묻어있는 정감과 편안함 덕분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서운함이 한결 가셨다.. 엄마, 아빠도 시부모님도 우리가 인사를 드리고 떠날 때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헤어짐의 서운함이 잠시 가실 거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도 늦어서 신발 신고 학교 가기 바쁜 아이들의 뒷모습에 대고 재빠르게 외친다.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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