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경제학부 입학처장과 독대를 하다.
3월임에도 캘리포니아는 따뜻했다. 내가 입고 있던 스웨터와 검은 더플코트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스탠퍼드 대학교가 어디인지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택시비가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일생일대의 담판을 앞두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싶었다.
내 계획은 간단했다. 오기 전에 미리 알아본 경제학 박사과정 입학처장 및 경제학부장, 그리고 유명한 교수님 등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고 생각한 GRE(지랄리) 점수에 대한 변론에 초점을 맞춰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과 정해진 약속은 없었다. 약속을 잡기 위해 미리 보낸 이메일들에 답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미리 날려 보낸 이메일들은 이미 적에게 잡혀 통구이가 된 비둘기처럼, 먹히다 만 앙상한 뼈가 되어 어딘가에 버려져 있었으리라. 마치 거란족과 담판을 짓기 위해 적 심장부에 홀로 들어간 서희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는 비장했다. 겁은 났지만 노인이 해 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주문처럼 되뇌었다.
내가 입학처장이었다면 자네 같은 친구와의 딜은 심각하게 고려해 볼 것 같네.
가만, 도대체 나의 어떤 면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를 말씀해주지 않으셨잖아! 그걸 알아야 그 매력을 또 발산할 수 있을 텐데! 란 생각이 (그제야!) 들었을 때쯤, 스탠퍼드 캠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언젠가 여행 와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곳. 그것이 해피엔딩을 위한 복선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택시에서 내렸다.
(Image source - Stanford.edu)
스탠퍼드로 먼저 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버클리 대학교가 진정한 나의 꿈의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히피와 저항의 상징 버클리 대학만을 바라보며 보낸 지난 4년을 생각했을 때 도저히 떨려서 먼저 갈 수 없었다. 물론 스탠퍼드 역시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학교이지만 나에게는 버클리가 첫사랑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먼저 스탠퍼드에 가서 딜이 잘 되면 좋은 패를 쥐고 버클리와의 담판을 주도하겠다는, 아니면 최소한 연습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사실 이 담판을 위한 여행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다.
지도를 보고 입학 처장 사무실로 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경제학부장 사무실로 가 봐도 마찬가지, 오기 전에 조사해 놨던 유명 교수님의 사무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시 입학 처장 사무실 앞으로 돌아와 무작정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복도 벽에 등을 기대어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정갈한 하얀 벽과 그 옆 통유리로 들어오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강렬한 햇빛이 눈부셨다. 그 햇빛의 끝에 고급스러운 크림슨 색 카펫이 주변의 모든 소리를 흡수할 기세로 깔려 있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눈인사를 던지며 지나가지만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피자와 오데코롱이 뒤섞인 희미한 미국 냄새가 카펫으로부터 올라와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두 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입학 처장이 나타났다. 복도에 뻘쭘하게 서 있는 내게 살짝 눈인사를 주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웹사이트에서 미리 봤던 모습이었다. 백발에 깐깐한 눈빛. 약간 마른 편이지만 왠지 벗어젖히면 이소룡 근육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몸매. 185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장신의 전형적인 미국 신사의 모습이었다. 심호흡을 길게 한 번 하고 열린 문에 노크했다.
"네, 어떤 일로 오셨나요?"
방 중간쯤 가로 놓인 T자형 테이블 뒤로 앉아 있는 그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미소가 어색해 보였다.
"이번에 박사과정 지원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어렵게 꺼낸 이 한 마디에 그의 표정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가식들이 이때다, 하고 싹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대답 없이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모니터로 몸을 돌려 앉았다. 대접이 생각보다 훨씬 더 박했다. 예상치 못한 선제공격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도 이에 질세라 한달음에 들어가 그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당겨 일단 앉았다. 그리고 준비해 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나의 학교 생활, 리더십, 꿈, 목표, 그런 얘기였다. 계획했던 대로 GRE 점수에 대한 변론도 했다. 원한다면 한 번 더 보고 합격자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포기하겠다, 고 패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씩 음음, 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기를 약 20분쯤, 비둘기랑 대화를 해도 이것보단 낫겠다 싶을 때쯤 나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저는 비록 떨어졌지만 다른 낙방생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이 방구석에 앉아 상심에 빠져 있을 때 저는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열정에 비추어 다시 한번만 더 고려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심이 통했으려나. 묵묵부답이던 그가 갑자기 나를 향해 고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죠. 그들은 당신과 확실히 다릅니다. 그들은 당신처럼 'nothing'을 위해 비싼 비행기 삯을 내고 여기까지 올 정도로 멍.청.하.지. 않거든요."
먼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잘못 들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분명한 메시지, 심지어는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나조차도 순간적으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한 마디였다. 미세하게나마 끄덕인 내 고개를 분리해다가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They are not as foolish as you.
'너처럼 멍청하진 않아.' 이번 줄 낙방을 통해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건 짐작하게 되었지만, 정말로 똑똑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들으니 아팠다. 똑똑하지 않다, 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멍청하다니! 그의 그 한 마디는, 가죽이 벗겨진 상처 입은 가슴에 소금이 되어 뿌려졌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나는 다시 구구절절 얘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의미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무슨 얘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침묵이었다. 침묵에 등 떠밀려 방을 그대로 나가게 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약 30분을 더 떠들었다. 한국의 대통령 이야기부터 여자 친구, 그리고 일본어 선생님이 다람쥐를 닮았다는 이야기까지. 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방을 나오면서 바로 잊어버렸다. 말을 하는 동시에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입학 처장은 자신을 찾아온 적 사신의 심장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비수를 꽂고 의기양양하게 뒤돌아 앉아 있었다. 난 서희가 아니었다. 비둘기였다. 통구이가 된 또 다른 비둘기가 위로를 건넨다.
사무실을 나와 일단 캠퍼스를 걸었다. 줄곧 땅을 쳐다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봤다. 눈이 부셨다. 따스한 봄햇살이 축복처럼 내려앉은 캠퍼스엔 정말 하나 같이 멋지고 예쁘게 생긴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수다를 떨고 프리즈비를 하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민소매를 입은 학생들의 피부가 윤기와 젊음으로 반짝였다.
이제는 정말 확실히 범접할 수 없게 된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강한 질투를 느꼈다. 그 주변의 공기까지 탐났다. 숨을 쉬는 것조차, 내가 속한 탁한 세상으로 가져갈 욕심에 공기를 들숨으로 훔쳤다가 이내 들켜 내뱉을 수 밖에 없는 더러운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냥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그대로 숨이 멎었으면 했다.
(Image source - Cardinal Red)
이따금 깔깔, 하고 영어로 웃는 소리가 주변을 맴돌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나의 스웨터와 검정 더플코트를 비웃고, 나의 갑자기 축 늘어진 어깨를 비웃고, 나의 못생긴 얼굴을 비웃고, 하도 떠들어서 메마른 나의 퀴퀴한 입냄새를 비웃고, 긴장이 풀어져 흐르기 시작한 나의 겨드랑이 땀을 비웃었다. 그들이 다니는 스탠퍼드에 '두 번이나' 떨어진 나의 멍청함을 비웃었다. '아무나 오는 학교인 줄 알았나 보네, 어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의 측면에서 내가 가장 열등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비참했고 숨고 싶었다.
돌아오는 택시에서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생각해 봤다. 버클리 대학에 딜을 하러 갈 용기가 도저히 생기질 않았다.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에게 이 레게머리의 흑인 택시 기사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내가 대답이 없으면 그저 혼자 떠들었다. 입학 처장에게 내가 저런 모습이었으려나. 귀담아듣지 않은 그 재미없는 이야기는, 택시를 세워놓고 어떤 손님과 섹스했던 무용담으로 흘렀다.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대는 이 레게머리 흑형 선글라스에 초라한 내 모습이 비쳤다.
그래 그냥 내일 돌아가야겠어.
호텔로 돌아왔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어딘가의 작은 호텔인데 느낌으론 100년은 족히 된 듯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루가 삐걱거리고, 엘리베이터에 타기 위해서는 우선 철망으로 된 문을 손으로 열어야 했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대자로 몸을 던져 누우니 곧 옆 방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샤워를 하고 맥주를 따니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새벽 비행기부터 아주 긴 하루였다. 돌이켜보니, 역시 이번 대학원 진학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은 GRE 점수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시험을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제는 포기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워싱턴 주 그 촌구석 바에 돌아가 노인을 만나게 되면, 가슴의 상처 값으로 술이나 사시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술을 먹으며 인생 다음 단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 되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TV를 켰다. 지루한 채널들이 뱉어내는 첫음절들 사이를 리모컨으로 재빠르게 뛰어넘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멈췄다. 진행자가 버클리 캠퍼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제는 대학원 생활. 한 학생이 많은 외국인 학생들의 수학 능력 및 영어 능력에 의심이 간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이내 화면이 바뀌고 버클리 입학사정관이 출연해 GRE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학생의 성취와 미래에 대한 분별력이 얼마나 낮은지 알지만 시스템상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토로한다.
그렇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GRE가 가진 대학원 시험으로서의 가치와 폐해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학교도 아닌 버클리 입학사정관이 TV에 나와, 그 폐해에 대해 콕 집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버클리에 가면 나의 낮은 GRE 점수를 포용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떤 테스트 케이스로 나를 시험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이 틀어 준 채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면을 응시한 채 노룩(no-look)으로 손을 뻗어 미지근해진 맥주를 들이켰다.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