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chu Pie Nov 16. 2019

반가워, 두려움

사업가로서의 마지막 날은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첫날이 됐다.

맹목적인 사업의 마지막 날은 좀 더 나은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첫날이었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일 뿐.




극적으로 계약을 따내면서 직원들 월급 걱정을 한동안 덜 수 있게 되었고, 수출 업체는 염원하던 내수 시장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최고의 순간은 계약 시점이었다.  그 후로는 오르막보다 더욱 가파른 내리막에 비명을 질러대는 일이 잦았다.  수출 업체는 익숙하지 않은 제품을 직접 생산하려다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나는 담당자에게 걸핏하면 불려 들어가 혼나기 일쑤였다.  봉제업계의 몇몇 담당자들은 많이 거칠었다.  육두문자는 기본이었고,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예상했지만 정말 상식과 교양이 없는 분이군요.  생각이라는 걸 합니까?"


공장은 이미 돌아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스펙을 변경한다는 이메일만 남기고 금요일 저녁에 사라져 버린 담당자를 찾아 토요일 점심쯤 전화를 걸었을 때 들은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무심한 말이 칼이 되어 수화기 건너편으로부터 날아와, 나의 고막을 찢고 심장에 박혔다.


얼굴 반항

좌충우돌의 납품을 삼 개월 여에 걸쳐 겨우 마친 날, 수출 업체 사무실로 돌아와 탕비실로 직행했다.  따뜻한 커피가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때 예전 회사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생겼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며 탕비실에 있는 거울을 봤는데, 축하 인사를 건네며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얼굴이 좀 어색해 보였다.


많이 피곤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퇴근해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의 왼쪽 면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다.  입을 못 움직이는 건 당연하고 왼쪽 눈 조차 감기지 않았다.  이마를 찌푸리면 주름살이 오른쪽에만 생겼고, 오른쪽 콧구멍만 벌렁거릴 수 있게 되었다이건 제법 신기했다.


"구안괘사입니다.  오늘 당장 입원하시고 중추신경계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침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겁을 줬다.  삼분의 일의 확률로 얼굴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으니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입원 수속과 링거 주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렸다.  아 내가 구안괘사라니, 란 충격에 넋을 놓고 있다가 링거를 맞기 위한 주사 바늘이 손등에 꽂혔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바늘만 꽂은 채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입이 돌아갔으니 다시 되돌려 놓고 오겠다고.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개발팀장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병원으로 돌아와 입원했다.


입원 첫날밤, 의사의 호출로 어두운 병원 복도를 지나 진료실로 들어섰다.  


소등된 밤 병원은 대략 이런 분위기였다.

(Image Source: 브런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삼 개월에서 육 개월이면 완전히 돌아올 거예요.  뭐 결혼도 하셨고, 누구 꼬시러 다닐 것도 아니니까 괜찮으시죠?  하하.  정확히는 밝혀진 바 없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요즘 과로하셨나요?  얼굴이 반항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하하.  병원에서는 약 3 - 4주 정도 스테로이드 처방하시면 되고, 매일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30분 정도 하세요.  자, 지금부터 Before/After 사진을 찍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기 보시고, 그렇죠, 여기요.  자, 웃으세요, 치이즈."


"치이이지."


'치즈'가 안됐다.  구안괘사를 '입이 돌아간다'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 입의 한쪽만 움직일 수 있어 부분이 상대적으로 얼굴 뒤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절망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절망하고 있는 사이, 맞은편에 카메라를 들고 앉은 이 젊은 의사는 실실 웃으며 연신 자, 치이즈하고 외쳤다.  그 의사의 한쪽 볼을 붙잡고 입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일장춘몽

도대체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어두운 병원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영혼이 몸으로부터 빠져나와 누워 있는 육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병원이란 곳은 그런 기묘한 기운이 있다.  생각에 빠진 상태로 잠이 든 것 같지만 왠지 머리가 차가워지며 주변이 또렷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영혼의 눈을 빌리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내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동대문에서 쫙 빼입고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뛰어다니는 내가 보였다.  어딘지 불안하지만 자신감에 찬 눈빛과 미소, 힘찬 걸음걸이가 불안함을 효과적으로 감추고 있다.  아마 큰 꿈을 품고 시작한 사업을 위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도대체 그 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영혼의 눈을 통해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술에 취한 바이어를 부축해 택시에 태워 보내고 90도로 인사까지 하는 영업 사원의 모습이 보인다.  비즈니스의 생명은 영업이라고 위로하며, 택시가 사라지자 비로소 옆에 있는 전봇대를 붙잡고 저녁 내내 위에 욱여넣었던 음식을 쏟아낸다.  다 게워내고 나니, 막상 왜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어서 한 철거촌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는 새내기 대학생이 보인다.  입모양만 겨우 따라 부르고 다.  눈 앞에서 펼쳐진 강제철거의 처참한 모습에 떨지만 그것이 분노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좀 더 과거로 가 보니 '장래희망' 란에 '과학자'라고 꾹꾹 눌러쓰고 있는 한 초등학생이 보인다.  그 초등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주저 없이 문과를 택한다.  영혼의 눈을 통해 바라봐도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문과가 좋아서 택한 게 아니라 이과가 싫었기 때문이란 것까지만 안다.


일장춘몽.


불현듯 내 인생은 한바탕 봄꿈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른 채, 순간순간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다.  대의를 위한 것이고 꿈을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것 역시 반격의 의지가 없는 허공에 대고 외친 일방소통이었을 뿐.  일장춘몽이었다.  마음대로 괴안국에 들어가 왕녀와 결혼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개미굴이었고 여왕개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저 낮술에 취해 평상에 누워 곯아떨어진 재야의 한량이었다.  


반가워, 두려움

그렇게 멋대로 잠에 빠져 있는 사이 나의 곁에서 고생했을 가족이 생각났다.  나는 꿈을 꾸고 실패하며 배우고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는지까지는 나의 짧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담을 가졌을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병실 한쪽에서 묵묵히 병시중을 드는 아내와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뒹굴고 있는 한 살짜리 아이가 보였다.  아내가 언제 저렇게 말랐나 싶었다.  아이는 또 어느새 저렇게 컸나 싶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망각한 채, 그 수단에 불과한 사업이 마치 인생의 목적인 양 살아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맹목적이었다.  그렇게 허상만 좇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며 살고 있었다.  사회인으로서 조금 성장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실패를 통한 나의 성장이 과연 주변의 희생을 정당화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 됐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서, 부끄러워서, 모든 병문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병든 내 마음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감기지 않는 왼쪽 눈이 마르지 않도록 안대를 채우고, 매일 아침 일어나 치약이 흐르지 않도록 고개를 오른쪽으로 비정상적으로 꺾은 채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다 이따금 일어나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의사는 하루에 30분씩 하라고 했지만, 아마 합치면 하루 세 시간은 될 것이다.  그런 생활을 약 2 주동안 매일 반복했다.


그렇게 2 주가 지난 후, 병원을 예정보다 일찍 나오기로 결정했다.  게으른 잠에서 얼른 깨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옆에는 함께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살 가족이 있었다.  그 순간순간은 한 번 지나면 다시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 시가 급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함께 결정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사업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입은 약 한 달 반 남짓만에 돌아왔다.  사실 웃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지금은 웃으면 오히려 왼쪽 입꼬리가 더 올라간다.


더 '활발해진' 왼쪽 안면 근육 외에 얻은 것이 있다면 실패의 무게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실패해도 괜찮다, 배워서 일어서야 한다, 저질러야 한다,라고 줄곧 해온 나의 주장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받아들일 뿐.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가 한 번 다쳐보고 나서야 몸가짐을 조심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철부지 망나니 사업가에서,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두려움을 인지하는 어른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이자 아빠로서 자각하기 시작했다.  


맹목적인 사업의 마지막 날은 좀 더 나은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첫날이었다.

이전 05화 동대문 새벽 시장의 신사 숙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