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chu Pie Jun 01. 2020

5일 만에 7천3백 불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큰 선물

억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를 위해 열심히 뭔가를 만들어 낸 인스타그램의 창업자에게 느낀 상대적 자괴감은 나를 많이 재촉했다.  무시해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왠지 그렇게 해서는 인생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찝찝해하고 답답해하는 와중에 medium에 있는 한 글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약 두 시간 만에 8장에 이르는 계획서를 썼다.  기부를 받아 어려워하는 지역 식당에게 전달하고, 식당은 그 돈으로 음식을 만들어 COVID-19과 싸우고 있는 의료종사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캠페인이다.  이 일을 같이 진행할 비영리단체만 있으면 됐다. 


그렇게 바로 작년까지 (소극적으로나마) 활동했던 한 비영리법인 (Bay Area K Group)에 연락을 했다.  5,00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공식 비영리법인인 만큼 정식 절차를 밟아야 했기에, 긴급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장작불에 물

첫 이사회에서의 반응은 예상보다 비관적이었다.  특히, 의료진들은 돈도 많이 버는 사람들이고, 더군다나 어차피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는 사 먹을 텐데 과연 우리가 도시락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가장 컸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다른 식당에 갈 자금을 우리가 연결한 식당으로 옮겨 담는 것에 불과할 뿐.  Incremental value가 없다, 즉 진정한 시장 가치는 없다는 지적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막 타오르려는 장작불에 물이 끼얹어진 것 같았다.  일단 첫 이사회는 "좀 더 알아보자"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끝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수화기를 들어 식당과 더불어 병원에 무작정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이 필요한지, 어차피 어딘가에서 사 먹고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구글 지도에 'hospital'이라고 검색해 나온 결과를 보고 큰 병원부터 전화했다.  옛날 영업사원 시절의 경험에 비추어 10번 중에 9번은 무시 당하리라 각오하고 전화했지만, 의외로 한 두 번 정도 수화기 건너편 사람이 바뀌면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의료 종사자들은 식사를 거르는 일이 허다하고 누군가가 음식을 지원해준다면 무엇보다도 사기 진작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 얘기를 그대로 이사회에 전달했다.  몇몇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연락이 닿았던 병원에서 직원들 (의사 및 간호사) 사진을 보내줘, 그것도 이사회에 전달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이사회가 설득되었다.


작은 불씨 하나하나 조심스레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Kaiser Permanente 병원의 의사 및 간호사분들


장작불에 불

이틀 뒤 온라인 이사회가 다시 소집되었다.  실제로 의료종사자들이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다는 새로운 사실과 사진이 큰 역할을 해줬다.  그렇게 결국 만장일치 찬성표를 얻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만 플랫폼을 처음부터 만드는 대신, 우리도 직접 한 번 도시락 배달을 해보자는 조건이었다.  모두에게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에 일리가 있는 조건이었다.  '가설'만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만드는 데에 처음부터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직접 운영해보고 현장에서 배운 점을 토대로 자동화 플랫폼을 만드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효율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 때, 가능하면 코딩 없이 현장에서 직접 가설을 테스트해보는 방법과 비슷했다.  직접 온라인 전단지를 만들어 배달을 시도해봤다는 Door Dash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배달해 주겠다면 사람들은 주문을 할 것이다"라는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가설은, 훌륭한 기술로 화려한 무엇인가를 개발할 필요 없이 온라인 전단지 만으로도 빠르게 테스트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미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속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런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기부하고, 동시에 레스토랑과 병원이 단 한 곳이라도 참여할지 알고 싶었다.  비영리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간단한 스토리와 함께 기부 링크를 걸어 놓고, 동시에 페이스북 펀드레이저를 통해 모금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목표는 2천 불이었다.  


모두가 처음 하는 일이라 될지 안 될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셜 미디어로 펀드레이저 하기에 가장 안 좋다는 주말, 그것도 그 중간인 토요일 밤에 시작한 건 호기가 아니라 무지의 결과였다.  그만큼 우리는 초보였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런 그래프는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바보 같이.


그러나 반응이 뜨거웠다.  시작하자마자 9백8십 불이 모였다.  결국 첫날 2천 불 목표를 달성해 버렸고, 다른 숫자를 봐도 고무적인 부분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비영리법인 페이스북 페이지의 포스트를 광고로 돌렸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가늠할 수 있는 프락시 지수인 CTR (Click-through Rate: 광고를 보고 얼마나 많은 클릭이 일어났는가)이 목표치 5%를 훨씬 상회하는 12.9%에서 시작한 것이다.  페이스북 광고 평균 CTR이 0.7%이라고 하니, 비록 광고를 본 사람 수가 많지는 않지만 관심도는 확실히 높았다.


결국 상향 조정한 목표인 3천 불까지 초과 달성하면서 5일 만에 총 약 7천3백 불 (약 8백7십만 원)을 모금했다.


이런 일이 있다고 알려지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병원에서도 연락이 거꾸로 오기 시작했고, 도움을 주겠다는 식당과 가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Alameda와 Santa Clara에서 파리바게트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빵을, 친한 셰프 형님은 볶음밥을 만들어 기부하겠다고 의사를 밝혀 오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접 운전해서 내려오겠다는 도깨비어와 같은 가게도 알게 되었다.  음식뿐 아니라, 의료진들이 퇴근 때 사용할 수 있는 클렌징 폼도 기부하겠다는 업체가 나와 연결하게 되었다.  갑자기 이 세상에 숨어 있던 멋진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좋은 스토리를 전달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참여할 것이라는 가설이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더 큰 불

첫 배달은 맨 처음 사진을 보내줬던 Kaiser Permanente 병원의 Cupertino 지점으로 나갔다.  Clinic이긴 했지만 차주에 모두 COVID-19 관련 중환자실로 차출되기로 한 의료진들이었다.  배달 음식은 산호세에 위치한 한국 음식점인 산장 (Korean Palace)에서 준비되었다.  친한 유튜버 형님을 통해 소개받았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께서 지역 사회 환원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시고 계신 분이었다.  도시락도 개당 약 18불 하는 것들을 많이 깎아 주셨다.


첫 배달.  그리고 처음으로 받아 본 감사 (영상) 편지.

그렇게 일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첫 캠페인은 성공리에 마치게 되었다.  정확히 $7,307.50을 모았고, 약 9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는 의료진들에게 약 2주에 걸쳐 총 790개의 도시락을 배달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줬고 응원해줬다.  작지만 지역 신문에도 났다.  

비영리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에 달린 댓글들. 천 명이 넘게 좋아요,를 했고 거의 60번 가까이 share 되었다.


얼떨떨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분이 좋았다.  굵직한 배달을 할 때마다 열심히 글을 올렸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댓글이 몇 개 달렸나 확인했다.  기부금을 받았으니 그 사용 내역에 대해 자세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자주 업데이트한다는 의무가 있었지만, 실은 댓글 보는 재미가 컸다.  거의 몇 시간마다 숨겨둔 곶감 꺼내 먹듯 핸드폰을 켰다.  개인 SNS를 할 때도 그러지 않았는데, 마치 사춘기 소년 마냥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 시커먼 바다를 헤엄쳐 와 겨우 뭍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발 끝으로 이따금 부드러운 모래의 감촉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한 편으로는 언젠가는 끝날 캠페인이고 언젠가는 시들해질 관심과 호응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언젠가의 가족 여행지 해변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가져 본 느낌이었다.      


배달이 진행될수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될수록, 더 많은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중환자실은 낮 근무조와 철야 근무조로 나뉘는데, 후자는 병원 내 카페테리아가 저녁에 문을 닫는 바람에 실제로 밤새도록 굶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

병원 외에도 독거노인, 취약계층 등이 COVID-19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입었다는 점. (매일 끼니에 도움을 주던 양로원 혹은 동네 hot lunch program 등이 문을 닫은 경우가 허다했다)

기업들도 COVID-19을 위해 따로 예산을 편성해 기부하고 있었다는 점. (특히 사내 이벤트 등으로 편성된 예산을 재택 대피 명령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지역 사회 환원 목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장작불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보이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뻐해 주고 용기를 준 이 시점에서 끝내면 멋지게 퇴장할 수 있으리라는 이기적인 생각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한 번 갈 데까지 가볼까, 하는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생각이, 

밀당을 시작했다.



1차 캠페인 사진


이전 01화 솔직히 자괴감 때문에 시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