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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chu Pie Jun 08. 2020

남을 돕겠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리고 그대로도 괜찮다

캠페인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게 성공적이었다.  목표였던 2천 불을 단 하루 만에 달성했고, 5일에 걸쳐 모인 금액이 총 약 7천3백 불 (약 8백7십만 원)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 금액으로 10곳이 넘는 지역 식당과 함께, 9개에 이르는 병원에 790개의 도시락을 전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반응이 너무 좋으니 계속 캠페인을 확대 진행하는 것이 옵션 중 하나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이쯤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지금 즐기고 있는 뜨거운 반응과 시선이 점점 시들해지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후자는 가장 화려할 때 퇴장해 큰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커뮤니티를 위한 좋은 일을 더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그만뒀다는 책임감에 개인적으로 시달릴 위험이 있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고민 자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이기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계속할 경우의 단점은 결국 '인기'가 시들해진다는 것이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욕망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그만 둘 경우 역시, 멋있게 퇴장할 수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를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럽고 스스로도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우리와 1차 캠페인을 함께했던 비영리법인 이사회에 캠페인을 더 하자고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고, 그런 확신이 없다는 걸 들킬까 조바심이 났다.


비밀의 방

솔직한 자아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비밀의 방에 들어가 '쌩 자아'와 마주 앉아 솔직하게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고 시작하는 거다.  


돌이켜보면, 남을 위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남에게 준 것보다 개인적으로 받은 것이 더 많았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자괴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뜨거운 반응을 보며 사춘기 소년처럼 흥분하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1차 캠페인의 성공을 발판 삼아 2차 캠페인을 더 크게 확대해서 진행하자고 생각한 건,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  이기적인 욕망이 맞다.  COVID-19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의료진과 지역 레스토랑을 돕는 것도 그들이 기뻐할 상상에 솟구치는 엔도르핀의 힘이었다.  그들을 돕는 일을 한다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만족이었고, 그 일에 환호성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멋있게 손 흔들어 화답하고 싶은 관심 욕의 발현이었다.  

실제로 플래시 세례는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구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상대를 대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등한 인간관계에는 구하고 싶다는 욕구가 존재할 수 없어요."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을 통해 무라카미 류가 던진 한 마디.  대등하지 않다고 해서 꼭 상대방이 열등한 건 아니지만, COVID-19으로 고생하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한 편으로는 그들보다 나은 상황에 있는 스스로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어쩌면 내면에 깔려있던 자괴감에 따끔하게 한 마디 해 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겨우 그딴 걸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사실 또 다른 종류의 이기적인 욕망일 뿐이다, 는 생각을 처음 '쌩 자아'가 털어놓았을 때 부끄러웠다.  남에게 그런 마음을 들킬까 겁났고, 그것이 이 모든 캠페인의 의미를 퇴색시킬까 무서웠다.  그래서 아닌 척했지만, 비밀의 방에 와보니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었다.  


니 마음대로 사세요

언젠가 유시민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물론 위와 같이 건방진 말투가 아니라, 훨씬 더 겸손한 말투였다.


(내 마음대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인간의 삶은 크게 두 가지 성질로 만들어진다.  바로 본성과 개성이다.  그 자신의 본성과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별 거 없다.  그중 본성은 다시 본능사랑, 그리고 연대(나눔)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말 그대로, 놀고먹는 본능에 충실하는 것, 사랑을 주고받는 것, 열심히 무엇인가를 위해 일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나누는 것 이렇게 네 가지다.  누구나 이 네 가지 본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개성은 이 네 가지 본성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이다.  사랑을 더 많이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놀고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일과 성공에 집착하는 것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는 것도 다 개성일 뿐이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나만의 개성을 십분 표현하며 살다가 가는 것이다.  


즉, 잘 사는 것이란 내 마음대로 나 답게 사는 것이다.  


남을 돕겠다는 이기적인 생각

이쯤에서 생각난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는, 포장마차에 마주 앉은 친구가 따라 준 소주 한 잔과 같았다.  마시기엔 쓰지만 막상 꿀꺽 삼키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결국 이번 캠페인도 나의 본성대로 욕구를 채우는 과정이었을 뿐이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엔 쓰지만 깨끗이 인정하고 나면 편했다.


자기 욕망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대신, 사실은 서로 윈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 역시 자존감을 되찾을 계기가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편이 솔직하고 더 정확한 표현이다.


로컬 레스토랑은 현금이 생겨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고,  의료진은 도시락이 생겨 사기도 오르고 걱정 없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나는 오랜 기간 발목을 잡던 우울증과 자괴감을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기적인 욕망이다, 내가 남을 돕는다는 건.


그리고 그대로도 괜찮다.  오히려 솔직할 수 있어서 속 시원하다.  인정하고 나면, 이제 돕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뭔가 엄청나게 큰 뜻이 있는 게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리하고 나니 이사회를 소집할 용기가 생겼다.  2차 캠페인을 더 크게, 더 오랫동안 진행하자고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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