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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chu Pie May 26. 2020

솔직히 자괴감 때문에 시작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지난 근 1년 간 나는 많이 변했다.  


아마도 그 전 20년에 걸쳐 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을 것이다.  


약 1년 전 나는, 담당하고 있던 팀의 운명을 놓고 매니저와 충돌해 그녀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자리를 빼앗기면서 방황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내 가슴속의 폭탄, 우울증을 만나게 된다.  언제 터질지 모를 질량 꽉 찬 무거운 쇳덩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끝없이 가라앉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심해를 몇 개월에 걸쳐 힘들게 헤엄쳤다.  그 긴 시간을 지나고 이제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으려나 싶었더니, 수면 위에는 화창한 햇살 대신 폭풍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충돌의 원인이 되었던 제품을 가로챈 매니저는 그 새 많이 좋아진 큰 배를 타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바로 우리가 만들었던, 그러나 불과 약 8개월 전만 해도 매니저가 없애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배였다.  매니저는 큰 배 맨 꼭대기에 염치없이 앉아 있었다.  바로 앞에 머리 하나 내밀고 간신히 떠 있는 나에게는 기어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대신, 45일 안에 팀을 안 나가면 회사에서 잘릴 것이라는 최후통첩만을 전했다.  직접 전한 것도 아니고 HR(인사팀)을 통해서.  눈 앞에서 멀어지는 큰 배의 후미에, 지난 팀원들이 달려 나와 손도 흔들고 눈물도 흘리고 구명보트를 던져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물 위에 뜬 채 손만 흔들어 화답했다.  난 괜찮아,라고 소리쳤지만 그게 우는 소리로 들렸을지 화를 내는 고함으로 들렸을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차피 그만 둘 생각이었어.  별로 충격받지 않은 척하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팔을 젓는 것이 귀찮았고, 그냥 다시 가라앉게 되어도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편하게 생각하는 게 편했다.  우울증과는 어떻게든 작별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예전의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나의 커리어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COVID-19이 터졌다.


폭탄을 게워내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아이들 학교를 닫더니 자택 대피 명령 (shelter-in-place order)이 내려졌다.  지역 경제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친한 셰프 형님도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셰프 형님의 레스토랑에 온라인 주문을 받기 위한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조금이나마 돕게 되었다.  나는 아직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옮길 팀을 찾는 중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약 2주 후, 조잡했지만 어떻게든 웹사이트가 하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셰프 형님 및 같이 도와줬던 동생들과 함께 조촐한 "Zoom Tonic" 파티를 가졌다.  각자 좋아하는 술을 가져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 세 시까지 남자 넷이서 Zoom으로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가져온 위스키를 거의 한 병 모두 비워버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깔깔, 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 이번에는 내 위장 속의 모든 것을 다시 비웠다.  너무 게워내다 보니, 가슴속의 쇳덩이 폭탄마저 게워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 일요일 아침이 되어버렸다.  토요일 전체를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냈는데, 나의 많은 부분이 같이 들어내진 느낌이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까만 줄을 그었다.  오랜만에 많이 즐겁고 취했다.


일요일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났을 때 느낌이 이상했다.  


가슴속의 쇳덩이 폭탄이 사라진 틈에 정체 모를 무엇인가가 들어와 있었다.  짙은 스모키 화장에 망사 스타킹을 신고 한 손에 채찍을 든 마조히스트 클럽의 마담과 같은 모습에 가깝다면 너무 변태적이려나.  아니, 오히려 이 표현이 너무 단조롭다고 느낄 정도로 복잡하고 그로테스크한 무엇인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 글을 기폭제 삼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가워, 자괴감

인스타그램 창업자가 동네 식당들을 살리기 위해 기프트 카드를 팔 수 있도록 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는 기사였다.  힘들어하는 동네 식당을 보며 너무 괴로워 아내와 함께 뚝딱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둔 억만장자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니.  존경심과 동시에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까 망사 스타킹 신은 그로테스크한 마담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난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편하게 생각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이 그로테스크한 마담은 어쩌면 꽁꽁 숨기고 싶었던 나의 자괴감이었다.  부끄럽지만 너무 어둡지만은 않은.  


인스타그램 공동창업자 중 하나인 Mike Krieger가 만들었다는 Gift Card 사이트 (www.saveourfaves.org)


어디에 누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웹을 뒤적이며 찾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할 때도,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도 계속 가슴속에 무엇인가 답답함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질문이 던져졌는데 사실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왠지 대답을 하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이 그래도, 내가 무슨, 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그로테스크한 망사 스타킹 마담의 채찍이 번득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medium의 한 블로그 글을 마주하게 됐다.  기부를 받아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동네 식당들에게 전달해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그들이 그 돈으로 음식을 만들면 COVID-19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의료종사자에게 도시락을 전달해 준다는 캠페인에 대한 글이었다.  한 번의 기부로 두 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글의 끝에는 작가가, 이 일을 직접 해 보면서 느낀 개선점을 정리해 놓았다.  그중에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레스토랑과 의료종사자를 연결하는 일이 손이 너무 많이 가니, 누군가가 자동화해 줬으면 좋겠다.

비영리 법인이 같이 해, 기부자에게 세금 혜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선, 얼마 전까지 조금이나마 참여하고 있던 비영리 법인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연락해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자동화라니...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 자동화란, 서당개에게 있어 풍월과 같은 것.  


플랫폼을 만들어 내가 아는 비영리 단체와 연결하면 글쓴이의 고민을 단 번에 풀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의 고민이 문제가 아니라, 더 나아가 COVID-19으로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내가 잘 가던 베트남 쌀 국숫집도 살리고 두렵고 힘들어서 눈물 흘리는 간호사에게도 따뜻한 식사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 자동화 플랫폼 계획서 (Product Brief)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1년 간의 울분을 활자로 토해내 듯.  그렇게 단 두 시간 만에 8페이지에 이르는 계획서가 나왔다.  숨기고 싶은 자괴감으로 인해 뭐라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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