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

by 강현

나에게 집이라는 곳은 그랬다. 무섭고 위험한 곳. 모든 안 좋은 일이 만들어지는 곳. 불행과 우울, 비명과 울음이 존재하는 곳. 도망쳐야 하는, 하지만 도망칠 수 없는 곳.


이십 대가 되자마자 나는 밖으로 나갔다. 여행을 다니고 직장은 가능한 멀리 있는 곳으로 구했다. 인도의 기차 안 침대칸도, 집집마다 대문에 철창이 쳐져 있는 에콰도르의 호스텔도 그 어느 곳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어딘가를 그렇게 떠돌다가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았다. 나에게 가족은 여행 중 짧은 만남에서 나를 환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헤어지고 이동했다. 그런 짧은 만남들이 오히려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연애도 그랬고, 직장도, 사는 곳도 나는 참 잘도 그만두고 옮겼다.


햇수로 4년 전의 일이다. 힘든 시기를 겪어낸 후에 이제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지독히 혼자인 시간을 이겨내고 나니 나 이상의 것도 책임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기 고양이 자매를 입양했다. 아이들을 데려온 첫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너무나 작은 생명들. 소중한 맘에 지켜보느라 밤을 거의 새웠다. 그 후로는 우울할 틈이 없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혹시라도 일이 끊길까 사이드잡을 항상 끼고 있었다. 추가로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한다고 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 애들을 보면 다 회복이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큰 위안을 나에게 주는 걸까. 쉬는 날에는 집에만 있는 게 당연했다.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대한 욕심 없이 나 한 몸 재울 공간만 되면 충분했던 내가 집을 원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렌트를 구해 애들과 셰어하우스를 나왔다. 집은 오래되고 형편없었으나 행복했다. 우리만의 첫 집에서 나는 꿈을 키우고 꼬마 고양이들은 쑥쑥 자랐다.


지난 9월,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이들을 위해 나무가 창 밖으로 보이는 집을 구해 들어왔다. 서울에서 큰 창으로 숲이 보이는 집이라니 다른 조건은 다 포기하고 계약했다. 그렇게 이전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서울의 산동네에 살게 되었다. 이사하고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 이 집이 더 좋아지고 있다.


호주에서 이민을 온 몸집이 유독 큰 고양이 둘은 늘 창가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한다.



나에게 집은 이렇다. 돌아올 곳. 멀리 외출이라도 나가면 금세 그리워지는,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곳. 안 좋은 마음이 녹아버리는 곳. 안전하고 따뜻한 나의 요새.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