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일하고 싶다면 몇 년 차에
캐나다로 갈 결심을 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편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비행기 티켓이던, 기차표던 항상 왕복으로 끊었다. 집을 떠나 어딘가로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다니. 그러자 정말 타국에서 먹고살아야 하는구나 실감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직장에까지 미쳤다. 다른 문화를 가진 곳에서 다른 언어로 일해야 하니 걱정이 앞섰다. 직업 자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서 그 점은 작은 위안이 되었지만 그 외의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작업 스타일이 다르면 어떡하나, 내가 그동안 몰랐던 다른 교정장치들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영어로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굿모닝' 인사하며 첫 출근을 하니 하루하루 빠르게 지나갔다. 치과기공사 일은 책상에 앉아 혼자 무언가 만드는 일이다. 한 번 해보라며 일을 하나씩 던져주면 그저 내 실력을 보여주면 되었다. 환경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같았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수월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보냈던 날들이 허튼 수고는 아니었나 보다. 그저 치과에서 우리에게 기공물을 의뢰하는 의뢰서가 영어로 쓰여있고, 고개를 들면 외국인 동료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이 달랐다.
직접 해외에 나와 일하다 보니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학생일 때에도 외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교수님들이 지나가는 말로 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외국에 가고 싶으면 무작정 가서 배우면서 일할 생각 말고, 한국에서 몇 년 경력을 쌓고 가라'. 나는 뭐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일하면서 경력을 쌓는 건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똑같은데 왜 다를까. 하지만 직접 와서 보니 백번 맞는 말이다.
외국과 한국은 일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일을 시작하는 1년 차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한다. 쉬운 일, 소위 말하는 보조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기존에 하던 기본적인 일은 새로 들어오는 후배에게로 넘어간다. 일 년, 일 년 연차가 쌓이며 점점 더 중요한 일을 배워가는 시스템이다. 맡은 일이 달라지니 시간이 지날수록 페이도 오른다. 하지만 외국은 다르다. 처음부터 테크니션(메인)과 어시스턴트(보조)로 나뉜다. 어시스턴트로 들어갔으면 그 일만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어시스턴트가 테크니션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곳에서 보통 어시스턴트는 한국에서 1, 2년 차가 하는 일들을 하는데, 그 일만 10년, 20년 하면서 고정된 페이를 받는다.
가끔 질문을 받는다. '이제 막 졸업하는데, 혹은 졸업할 건데 외국에 나가도 되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한다. 적어도 3, 4년은 한국에서 일해보기를 권장한다고. 한국에서 그렇게 싫었던 야근은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점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압축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웠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경우의 수를 접한 것이다. 한국에서 늦게까지 일하며 경력을 쌓은 3년 차와 외국에서 칼퇴근하며 지낸 3년 차는 실력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특히 기술을 보여주어야 하는 치과기공사 일에서는 실력이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제 막 졸업했다면 경력을 쌓아서 오길 추천하고, 경력이 이미 있는데 해외에서 일하는 게 걱정이 된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직업도 비슷하지 않을까. 외국 나와서 보니, 한국 사람은 어디서든 일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