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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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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May 31. 2024

텃밭에서 기른 시장표 로메인 상추


겨우내 치솟던 잎채소 가격이 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머위로 이미 초봄의 쓴맛을 보기는 했지만 거기서 만족하기에는 봄볕을 맡고 쑥쑥 자라나는 다양한 잎채소의 등장에 매일 거르지 않고 채소 만찬을 즐기는 중이다. 우리 집 앞 마트 직원은 채솟값이 내린 후로 지나는 손님을 향해 치커리나 상추를 권하기 시작하여 나도 종종 천 원도 안 되는 값으로 저렴하게 사 올 때가 있다. 근처 마트는 저렴한 대신 빨리 먹지 않으면 빠르게 물러버린다는 아쉬움이 있다면 애용하는 앱에서는 조금 더 비싸도 신선하여 며칠을 두고 보관할 수 있는 것을 집 앞으로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마트나 쇼핑 플랫폼에서 제아무리 싸고 싱싱한 것을 판매한다고 해도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오는 것에는 비할 바가 없다. 메인 자리가 아닌 주로 시장 초입이나 끄트머리에서 자기 밭에서 자란 채소를 챙겨 나와 소규모로 파는 상인들은 소일거리 삼아 키운 것을 가지고 나오느라 대체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오후가 지나고 이른 저녁 즈음이 되면 퇴근하고 싶은 마음에 떨이라며 한 소쿠리 가격에 남은 것을 몽땅 넣어주기도 한다. 내가 마트나 쇼핑 플랫폼에서 사려면 만 원은 족히 줘야 하는데 엄마는 삼천 원에 그 두 배가 되는 양을 사 올 때도 있어 가능하면 엄마에게 잎채소를 부탁 중인 요즘이다. 

엄마가 삼천 원에서 오천 원을 주고 로메인 상추, 루콜라, 적상추, 적겨자, 치커리, 당귀까지 잔뜩 사 오면 둘이서 반씩 나눠도 충분히 많아서 나는 또 그걸로 일주일을 나눠 먹는다. 밭에서 대충 심은 걸 수확한 거라 벌레가 섞여 있을 수는 있다고 해도 생각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거나 흙먼지로 지저분한 것은 없다. 들어보니 깨끗한 것은 장에 나와서 팔고 모양이 별로인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엄마 단골이 된 상인이 수확하고 판매 중인 로메인 상추는 여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데 마치 양상추를 씹을 때처럼 아삭 거리며 수분감이 넘친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같은 로메인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뿌리만 남겨놓고 베어 오기 때문에 먹을 때마다 줄기에서 떼어먹어야 하는데 뜯을 때마다 ‘콰직’ 하며 물이 튈 정도니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신선함을 감히 비교할 수 없다. 대체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지만 가끔은 밥과 쌈장만 넣어 쌈밥을 먹기도 하는데 한 입 씹을 때마다 상추에서 새어 나오는 수분과 다른 채소에서 느껴지는 쓴맛이 마른 입을 촉촉하게 해주는 것이 별미라 입맛이 없을 때도 그 맛을 떠올리면 입안이 쌉싸름해지면서 금세 군침이 돈다. 

사실 겨울이 지나고 이렇게 생 채소를 먹는 것이 오랜만이라 처음 먹은 날에는 가스가 얼마나 차던지 밤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봄의 초입에 나오는 채소는 미나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익혀서 쓴맛을 빼고 먹느라 생으로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오래간만에 들어온 생 채소에 장이 놀랐는지 연신 가스가 차는 바람에 자는 동안에는 배에서 나는 소리와 가스가 이동할 때마다 느껴지는 불편함에 뒤척거리기를 반복하거나 깨어있을 때는 연이어 나오는 방귀 때문에 남사스러울 지경이라 앞으로는 무서워서 생 채소는 먹지 못하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도 혀가 기억하는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다 보니 점점 괜찮아졌는데 이렇게 장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면 평소에도 골고루 먹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고기 먹을 때 상추나 깻잎을 들러리 삼아 먹는 경우가 있지만 요즘은 누가 뭐라 하든 채소가 주인공이다. 쌈밥 안에 소량의 밥만 넣는 것은 채소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머위는 자작하게 끓인 된장과 함께 먹었다면 요즘 쌈밥은 무난하게 쌈장만 넣는다. 로메인 상추 한 장 위에 루콜라, 겨자, 치커리, 당귀를 조금씩 뜯어 넣고 밥을 조금 올린 다음 쌈장을 얹는다. 쌈장만 조금 넣었을 뿐인데도 짭짤한 맛 덕분인지 풍부한 식감과 맛이 나는 훌륭한 반찬이 완성된다. 묵은 집 된장으로 만든 쌈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판용 쌈장도 좋다. 다만 단맛이 많이 나는 것보다는 콩 덩어리가 씹히는 쪽이 더 잘 어울린다. 

샐러드로 먹을 때는 모든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손으로 뜯어도 좋지만 바쁠 땐 가위로 자르기도 한다. 커다란 크기의 믹싱 볼에 한 잎 사이즈보다 조금 큰 잎채소를 잔뜩 넣은 다음 토마토를 조각내어 넣고 혈당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사놓고 먹지 않았던 사과 식초와 올리브오일 그리고 파마산 치즈를 뿌려 골고루 버무려준다. 세일할 때 냉큼 사놓은 부라타 치즈 한 덩이까지 올려주면 집에서도 근사한 샐러드를 먹을 수 있다. 가끔 조금 더 맛있는 샐러드를 먹고 싶을 때는 올리고당을 한 바퀴 돌려주거나 토마토를 소금에 잠깐 재워두기도 한다. 건강과는 조금 멀어지겠지만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을 달래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다. 

지금 냉장고에는 딱 한 번 더 먹을 만큼의 채소와 토마토, 그리고 부라타 치즈가 남아있다. 아껴먹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무엇이든 신선할 때 먹어야 맛도, 영양가도 좋다. 마지막으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고 난 뒤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또 한 번 채소를 부탁해 봐야겠다. 특히 마트에서도, 쇼핑 플랫폼에서도 구할 수 없는 싱싱하고 상큼한 로메인 상추를 넉넉하게 챙겨달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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