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초보 중에서도 초짜 수준입니다
작년 4월부터 시작했으니 무용수업을 들은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기본무와 한삼무, 화선무 그리고 이름 모를 기초무용 이렇게 네 가지 무용을 배웠는데 한국무용을 출 줄 안다는 감각은 아직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처음이라 잘 못 추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한국무용이 뭘까 라는 질문에는 물음표 밖에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막 수업에 임했을 당시 ‘나도 한국무용 잘 몰라요.’라고 말해주었던 누군가의 말이 내게 기운을 주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 년을 춘 한국무용이지만 여전히 무릎을 굽히는 굴신 자세가 어렵다. 나름 굽힌다고 굽혔는데 어째 거울 속 내게선 변화가 없다. 내 눈에만 그런 게 아닌지 지난주에는 선생님으로부터 ‘무릎 좀 굽혀라’는 소리를 들었다. 손끝, 발끝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팔꿈치나 무릎은 정말이지 뇌가 원하는 값과 몸이 수행해 낼 수 있는 값이 일치하지 못할 때가 많다. 뭐 몸통은 아예 머릿속부터 엉망이니 말을 말고.
내 의지와 달리 굴신이 잘 안 된다는 푸념에 무용을 전공했다는 수강생 분이 아킬레스건이 짧으면 무릎을 굽히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친절한 조언을 내주었다. 정말 아킬레스건이 짧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다리의 근력이 부족해서 굽히질 못하는 건지 아직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의 상냥한 말에 나의 뻣뻣한 몸과는 달리 마음은 말랑해진 기분이었다.
함께 춤을 추고 배우는 수강생들과는 매번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시작하여 매주 ‘다음 주에 또 뵐게요.’라는 인사로 마무리 짓는 사이긴 하지만 사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은 한국무용에 대한 것보다 더 없을 정도다. 열다섯에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 중에는 최근 들어 통성명을 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 여전히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중간에 합류한 분들도 있지만 일 년 내내 같이 수업을 듣는 분도 절반은 되는데 어쩌다 같이 몸을 풀거나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나눠먹는 일이 있고, 수업 영상을 공유하기 위해 드물게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거나 우연히 차를 얻어 타는 일도 있긴 하지만 그 이상의 교류를 가지거나 하진 않는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비슷하여 따로 둘만 이야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고 간혹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좀 빠지지 마라’는 말을 듣거나, 동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다.
문화센터 수업은 어린이의 보호자로 참석했을 때를 포함해서 여러 번 참여한 적 있지만 일 년 가까이 지속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담 없이 다음 수업을 또 신청할 수 있는 데에는 사실 이런 얕은 교류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 싶다. 수업 내용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 맞지 않아 수업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편이라 이렇게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해야 할까, 서서히 익숙해져 가는 관계가 한국무용교실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먹는 것도, 배우는 것도, 친해지는 것도 조금만 과하면 금세 체하는 편이라 의욕에 맞춰 조급하게 굴다 보면 꼭 탈이 나곤 하는데 한국무용을 익히는 내 몸도, 알아가는 머리도, 함께 추는 사람과의 관계도 이렇게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끔 갑갑하긴 해도 속이 편안해지는 구석이 있다. 연습실에 가면 꼭 먼저 말을 건네주는 분들이 있고, 수업에 빠질 때마다 ‘빠지지 말라’며 한 마디를 하는 선생님이 있어 소외당한다는 감정은 없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지는 이 관계가 소화 잘되는 음식처럼 편안하다.
수강생 연령대의 폭이 넓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조심스러움도 있지만 아무래도 어른들 앞에서는 꾸민 행동을 해도 다 들통날 것 같은 기분에 오히려 더 한국무용 수업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사실 다들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십 분 간의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어 더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지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꼭 같이 밥을 먹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야 친해지는 건 아닌 거처럼 한국무용 역시 꼭 잘 춰야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이 수업에서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으로 친해지는 사람이 생기고 또 진심으로 한국무용을 안다고 느끼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다. 길다면 길게 느껴질 일 년이지만 실은 긴 인생 중 고작 일 년이다. 아직은 춤을 추는 것도, 아는 것도, 사람과의 관계도 다 초보 단계. 초보여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배울 수 있는 것을 양껏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