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무를 배울 두 번째 기회!
“다음 주에 봬요!”
라는 인사에 ‘저는 다음 주에 못 와요. 아이 방학이거든요.’하고 대답하는데 아쉬움이 뚝뚝, 연습실을 나오는 내내 미련을 뚝뚝 흘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지난주에는 피곤해서 수업을 쉴 생각으로 늦게까지 잠을 잤다. 아이 등원 시간에 맞춰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봄방학이 되면 어차피 출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자, 쉬고 싶은 마음이 물에 씻겨 내려가는 먼지와 함께 벗겨져 내려가버렸다. 갑작스러운 변덕에 머리도 못 감고 샤워도 못 한 채 그냥 머리 질끈 동여 메고 연습실로 나가자 역시 집에서 뒹굴거리느니 춤추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집에서 그저 쉬고 싶어 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동작을 따라 했는데 그 증거로 다음 날 팔과 어깨 근육이 다 뭉쳐버렸다. 매주 같은 춤을 추지만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근육이 뭉칠 때도 있고 안 뭉칠 때도 있는데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근육통이 생겼다.
오늘은 애초에 수업에 빠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씻고 누룽지를 삶아 먹으며 배를 든든히 채웠다. 지난주에는 빈속으로 갔다가 결국 쉬는 시간에 다른 수강생 분께 미숫가루를 얻어먹었는데, 그 미숫가루가 아니었으면 아마 다음 날의 근육통도 없었을 것이다. 공복으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첫 한 시간이야 얼렁뚱땅 넘어간다고 하지만 십 분 쉬고 난 다음 시간부터는 다르다. 배가 든든하고, 스트레칭으로 몸이 깨어있는 데다 잡념이 없어야 수업에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태가 된다. 오늘은 식사도 했고 근육도 다 풀었으니 수업 도중에 딴생각만 안 하면 완벽할 예정이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시작된 수업을 뒤늦게 따라가는데 예쁘게 추려고 하다가 발동작을 틀려버렸다. 몸을 충분히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허리와 다리가 덜 풀렸던지 무릎을 굽히는 굴신 자세도 잘 되지 않았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상체가 수직으로 일직선이 되도록 해야 하는데 의식을 하지 않으면 곧잘 머리가 앞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허리와 배,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갈 때는 굴신 자세를 할 때마다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지도 않고 한쪽 다리를 드는 자세를 할 때도 몸이 흔들리지 않는데 오늘은 조금 몸이 흔들렸다.
기본자세가 끝나고 화선무를 출 차례가 되자 기존의 수강생들이 부채가 없는 신입 수강생들에게 여분의 부채를 나눠주는 모습이 이어졌다. 나도 동참하고 싶었지만 여분의 부채가 없었다. 저번에는 부채가 헐거워진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이번에는 여분의 부채를 가진 것이 부러워지는 날이었다. 모두가 어우러져 화선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추는데 뒷부분으로 넘어가자 춤추는 걸 포기하고 눈으로만 동작을 따라가는 신입 수강생들이 늘어났다. 나 역시 마지막 부분은 헤매는 단계라 춤을 놓치고 멀뚱 거리는 것에 동참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번주부터 화선무 춤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몇 달째 추고 있는 춤이라 앞부분에서 동작을 틀리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새로이 듣기 시작하니 지난번에는 놓치고 지나갔던 세부사항을 짚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첫 시작에서의 부채 각도라든지, 부채를 뒤로 올릴 때의 힘의 강도라든지 발동작의 박자뿐 아니라 정확한 위치를 고쳐 잡을 수 있어서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서 투박함이 한결 줄어 보였다.
이번 기회야말로 화선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때다 싶어 이제부터는 수업에 빠지지 않고 매일 출석을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다음 주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집에서 아이를 봐야 했다.
‘아이를 수업에 데리고 나와?’
‘부모님께 부탁해?’
여러 수를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대안이라고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쉬는 시간에도 가만히 있기가 아까워 다른 수강생에게 화선무의 여러 동작 중에서도 유난히 잘 안 되는 동작을 물어보았다. 조금 전 수업 시간 내내 왼쪽으로는 선생님을, 오른쪽으로는 그분의 동작을 보며 춤을 추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쉬는 시간에도 부탁을 드려본 거였다. 흔쾌히 동작을 알려주시던 것이 무척이나 감사했지만 죄송스럽게도 내 몸은 좀처럼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해서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박치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박자에 맞춰 발을 빠르게, 또 느리게, 앞으로 했다 뒤로 했다 바꾸어야 하는 동작이었는데 그분의 구령에 맞춰 발을 움직이다가도 어느새 또 반대쪽 발을 내미는 걸 보며 이대로 계속 반복했다간 그분의 쉬는 시간을 다 빼앗겠다 싶어 도중에 그만두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가락을 발 삼아 움직여보지만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어 다다음주에 수업에 나가면 오른발, 왼발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발을 움직이는 박자를 박수로라도 치며 제대로 익혀봐야 할 거 같다. 뒷 수업의 한삼춤 수업에서도 진도가 꽤 나갔는데 오른발, 왼발을 신경 쓰다 손동작을 틀리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여전히 팔의 각도나 어깨의 말리는 모양, 고개의 각도 같은 것이 선생님과 달라, 선생님의 몸은 우아하고 살짝 기울어진 꽃의 모양과 가깝다면 나는 그냥 거북목처럼 보여서 곤욕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동기님에게 발동작이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동기님도 발동작 틀리는 걸 들키기가 싫어 부러 발이 드러나는 연습복 대신 발이 가려지는 연습복을 입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라. 어쩜, 이렇게도 비슷한 마음인지 나도 한동안 뭣도 모르고 이 옷 저 옷 입어보다가 요즘에는 발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치마의 비침 사이로만 보이는 한 겹 치마를 주로 입고 있어 동기님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언제쯤 발을 훤히 내놓고 춤을 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날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얼른 다다음주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