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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Feb 10. 2023

소박해진 목표

정월대보름 바로 다음날에 있던 수업에서

 전날의 피로가 남은 탓에 평소보다 둔한 움직임으로 무용 수업에 갈 준비를 했다. 수업 전날인 일요일은 정월대보름, 즉 선생님과 여러 수강생의 공연이 있던 날이다. 공연에 참여한 분들도 빠지지 않을 수업을 내가 빠질 순 없다는 생각에 그 와중에 밥까지 챙겨 먹고 시간 맞춰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정월대보름날 ‘해운대달맞이온천축제’에서 볼 예정이었던 것은 태평무와 한삼무, 그리고 강강술래 총 세 공연이었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막 도착했을 때는 달집 태우기를 앞두고 있던 때라, 까치발을 들어도 공연이 이루어질 무대나 모래사장 위에 마련된 화면이 보이질 않았다. 해수욕장의 모래사장부터 인도, 그리고 정원까지 사람들의 머리 사이로 커다란 달집의 꼭대기만 겨우 보일 만큼 이미 많은 사람이 앞에 가득했다. 외출 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일부러 들린 바닷가지만 어쩌면 이대로 공연도 못 보고 그냥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달집에 불이 붙고 노란 연기가 승천하는 용처럼 구불거리며 바람을 따라 날아 올라가는 동안 연기와 재를 피해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무대를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달집이 거의 다 탈 쯤부터 시작된 공연은 선생님의 태평무로 문을 열었고,  짙은 파란색 치마와 옥색 저고리의 품위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한복차림새와 수려한 춤사위로 혼자서 무대를 꽉 채우는 선생님의 모습에 주변에서는 연신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후로 민요 공연이 펼쳐지고 그다음에서야 한삼무를 볼 수 있었는데 얘기로만 듣던 비취색과 분홍색의 의상은 마치 선녀옷만 같아서 한삼이 펄럭 거리는 모습이 마치 선녀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습실에서는 비장하게만 느껴졌던 음악은 오히려 큰 무대에서는 적당히 진지한 느낌이 주어 앞뒤로 이어진 흥이 나는 노래 무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내어 축제를 보다 풍성하게 꾸며주었다. 


강강술래 무대는 한삼무 다음에 이어진 가요 무대가 끝난 뒤에야 볼 수 있었는데 나는 한삼무 무대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미처 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대했던 강강술래를 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예 보지 못할 거라 여겼던 태평무와 한삼무를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날이었다. 


그런 날의 다음날이라 그런지 도착한 연습실에는 어쩐지 사람이 평소보다 적게 모여있었고, 선생님 역시 예상대로 피곤한 모습이었다. 공연에 참여한 수강생은 대체로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는데 그래도 출석한 분들 또한 있었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한 후기 같은 것을 짧게나마 전할 수 있어 기뻤다. 사실 나는 전날 대낮부터 저녁까지 뮤지컬과 해운대의 축제를 보느라 피곤했던 거라 막상 연습실에 나가니 크게 피곤한 줄도 모르고 춤을 출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나 무대에 섰던 다른 분들은 수업시간에도 내내 피곤한 모습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여느 때와 같이 기본동작과 화선무, 그리고 한삼무를 추는 수업은 이어졌고, 손동작만 추는 건 어째 그냥저냥 흉내를 내며 따라 출 수 있겠는데 발동작을 생각하면 항상 온몸이 엉망으로 뒤틀려 버리는 탓에 나 때문에 주변 분들까지 틀려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예쁘게 추는 것은 뒤로 하고 일단 동작이라도 다 외워버리면 어떨까 싶다가도 동작만 외우는 사이에 나쁜 버릇이 붙을까 고민도 되어 그냥 에라 모르겠다, 빨리 발동작 만이라도 어째 해결을 하자 마음을 먹었지만 사실 발동작이 제일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신경이 덜 쓰이기도 해서 발동작이 잘 될 정도면 다른 건 오히려 문제가 안될 가능성이 높았다. 


무대에 오른 한삼무를 영상으로 찍어 집에서 그걸 보고 연습을 했다면 조금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무대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어차피 공연 중에는 발동작이 보이지 않아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잘하는 것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자고 한국무용을 시작했지만 너무 못하면 즐거움도 덩달아 소실된다는 걸 알았다. 조금 못해도 음악에 맞춰 덩실거리는 재미가 있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춤이 느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진다. 춤의 재미는 잘 추는 것 혹은 못 추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못 춰도 즐겁기만 한 거보다 조금씩 춤이 늘어가는 재미를 맛보고 싶다. 지난주만 해도 무대를 꿈꾸었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조금 소박하게, 한 주가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에서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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