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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2. 2023

역대급 난이도인 '입춤'

나의 의지라는 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두 번의 수업을 빠지고 나니 괜히 이번에도 그냥 집에서 쉴까 하는 유혹이 인다. 그렇지만 이번 달부터는 새 춤을 배우기 시작해서 첫 수업에 이어 이번까지 빠졌다간 세 달 내내 고생을 할 게 뻔했기 때문에, 갔다. 고민하느라 아침 식사는 못했지만 쿠키 하나와 두유 한 팩을 챙겨 먹고 서둘러 택시를 불러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지난주에 진도는 많이 나갔어요?”

이 주간 수업에 빠지고 난 후라 더 반가운 다른 수강생 언니들에게 결석의 연유를 설명하던 끝에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다.

“아뇨, 별로 안 나갔어요. 40초 정도.”

사실 더 긴 대답이 돌아왔지만 기억에 남는 건 그저 ‘40초’라는 숫자뿐.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에이, 별로 안 나갔네. 다행이네.’ 하고 안심을 한다.

이번 분기에도 새로운 수강생이 대거 늘어났는데 그래서 첫 한 시간 동안은 기본무만 계속 반복되었다. 이제는 진짜 다 외울 때도 되었는데 왜 아직도 틀리는 순간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게다가 두 수업을 빠지는 이 주 동안 남은 코어 근육마저 다 소실되었는지 한 발을 들어야 하는 때마다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 팔동작 라인도 매주 조금씩 달라지는 거 보면(매주 조금씩 나아진다는 말이 아니다) 한, 두 주 사이에도 몸은 쉽게 굳고 또 풀리는 듯하다.

기본무를 일 년 내내 반복한다고 이야기하면 자칫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은 추면 출수록 기본적인 동작을 디테일하게 단련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기초수업에 오래 머물며 계속 추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본무 끝에는 지난 분기 때 배운 한삼무를 두 번 연달아 췄는데 의외로 한삼무는 머리를 쓰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어 신기했다.

일주일 내내 커피를 마실 일이 잘 없지만 무용 수업의 쉬는 시간만큼은 예외일 때가 많다. 이번에도 당충전을 위해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고 기존에 있던 수강생 언니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동작을 점검했다(기 보다는 받았다). 이번 달부터 추는 춤은 ‘**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 번을 들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구는 쓰지 않고 마지막쯤에 긴 천이 등장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어쨌든 도구는 쓰지 않으니 이번만큼은 춤을 추다 한삼 막대기나 부채처럼 날려버릴 일이 없겠다 싶어 또 한 번 의심 없이 안심을 해버린다.

짧은 쉬는 시간 후 시작된 수업. ‘입춤’이라는 춤이라고 들었는데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도대체 발과 손이 어디로 어떻게 향해야 하나 조금도 감이 오지 않는다. 보통 첫 동작은 네, 다섯 번 반복해서 하다 보면 따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음악도, 박자도 낯설고 팔동작도 낯설다. 뒤로 젖혀진 오른쪽 팔을 팔꿈치부터 위로 들어 올리는데 아무리 해도 선생님과 내 팔의 각도가 다르다. 미묘하게 다른 것도 아니고 꽤 다르다. 지난주 수업에서 진도가 40초 밖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안’이 아니라 ‘못’ 나갔던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춤을 추면서 떠올렸다. 빠지지 않길 잘했지, 만약 두 번의 진도를 놓치고 셋째 주인 다음 주 수업에 왔다가는 후회는커녕 그냥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번 ‘어렵다.’, ‘잘 안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이번만큼 머리로도, 몸으로도 따라가지 못한 춤은 처음이 아닐까.

계절이 달라져서일까, 아니면 춤이 어려워서일까. 유난히 힘들고 땀도 많이 난다. 줄줄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안에 입은 민소매 속옷이나 묶은 머리 아래로 땀기운이 스며든다. 이제 연습복도 갈아입어야 할 때가 온 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긴소매 연습복에 총무님에게 물려받은 노란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다음번에는 동기 님과 같은 파란 치마를 입을까 철쭉을 연상하게 하는 핑크색 치마를 입을까 고민한다. 핑크색 치마는 속치마라 그 위에 안이 비치는 얇은 겉치마를 하나 더 입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지금 입지 않으면 더 더워져서 입을 기회가 없겠다. 이번 춤은 도구도 없으니 화려하게 핑크색 치마를 입고 더 더워지면 파란 치마로 바꿔 입어야지. 매주 같은 치마를 입는 분들도 있고 매주 다른 치마를 입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평상복을 입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절에 따라 같은 옷을 반복해서 입는다. 치마는 매번 빨기도 어려워서 몇 번 연달아 입고 나면 빨아서 다림질한 후 옷장 안에 넣어두면 된다.

수업 중 선생님이 말했다. 버선이 닳도록 바닥을 쓸며 춤을 춰야 한다고. 내 버선은 조금 낡긴 했지만 춤을 열심히 춰서는 아니고 얼룩을 지우느라 박박 문질러 빨아서 그렇다. 결혼할 당시 어머님이 한복과 함께 사준 버선인데 지금은 춤을 출 때마다 신느라 명절 때는 신기 어려울 만큼 볼품이 없어졌다. 일 년 동안 춤을 췄지만 닳았다고 할 만큼은 아니고 그렇다고 멀쩡하다고도 할 수 없는 버선의 상태가 딱 나의 일 년 춤솜씨를 나타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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