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바람이었던 걸까요...?
"넌 부족해서 안되겠어."
2012년 여름, 저는 발표를 마친 후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 앞에서 이 막말을 들었습니다. 이 막말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저는 제 눈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멈추려 노력할수록 오히려 눈물이 더 차오를 뿐이었습니다. 제 몸의 수분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울었습니다.
누군가 발표를 마치고 시원섭섭해서 우는 것이냐고 묻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입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시원섭섭해서 울었던 게 아닙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래서 울었습니다. 그 발표를 위해 제가 들인 수많은 노력이, 그 막말 앞에서 무너져 내린듯했습니다. 독일계 덴마크인 베르타 베그먼의 그림 속 여인처럼, 그림의 제목보다 더 저는 절망했고 좌절했습니다.
한번쯤 솔직하게 말하려 합니다.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제 부족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막말을 들을 정도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부족한 사람들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준 것이, 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막말을 들었던 그 순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희미해지지조차 않습니다. 그날 제가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서 있었는지가 기억이 날 정도로요.
다행스럽게도 그 막말이 그저 막말임을 알아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게 막말을 한 그 사람이 막말을 일삼는 사람임을,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임을 알아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제게, 제가 막말을 들을 만큼 부족하지 않았다고, 너의 발표가 제일 좋았다고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제게 해준 그 말이 그저 인사치레가 아님을 알았기에, 그 따뜻한 격려가 있었기에, 저는 포기하려던 일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그 10년간 저는 노력했습니다. 제가 들었던 막말이 그저 막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알고도 제게 격려를 해준 분들께, 그리고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께, 그분들의 선택과 믿음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해냈습니다. 그리고 막말이 막말임을 증명해내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연봉이 능력을 입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저는 지금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보다 더 높은 연봉도 받고 있습니다. (계약직이기도 하고, 제가 몸담고 있는 이 업계가 하향평준화되어 있기에, 제 나이대, 제 직급에 비해서는 한참 낮은 연봉이기는 하지만요.)
무엇보다도 그 사람 아래에서 제 아이디어를 가져가려 했던 사람들이 저를 견제할 만큼, 그리고 제 아이디어를 믿고 지지해주는 또 다른 좋은 분들이 생길 정도로 저는 성장했습니다. 막말에도 바스라질 듯 했던 저는, 마치 그림에 뿌리 내린 듯 굳건하게 자리한 참나무처럼, 이제 비바람에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자라났습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10년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마다 저는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막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견디다 보니 온갖 질병을 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지난 노력들이, 그 시간들이 후회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들을 지나 성과를 얻어낸 스스로에게, 그 시간동안 격려해준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막말을 했던 그 사람에게 제 글을 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을 함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고맙다고 하기엔 그렇지만 고마워요. 당신의 그 막말 덕분에, 저는 당신의 생각보다, 제 기대보다 더 성장했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www.artnet.com/artists/bertha-wegmann/despair-g390howZ1wV92m53sAmun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