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메이커

치료와 삶

페이스 메이커. 달리기 혹은 자전거 경주에서 시간과 속도의 기준을 만들어 주거나 팀원의 전략적 희생을 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경기에서 스스로 페이스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함께 달리는 것을 유지하다 중도에 빠지는 역할을 자처한다. 공식적인 경기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비공식적으로 라도 페이스 메이커를 두는 것을 보면 그 역할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페이스 메이커의 기능은 속도 조절만이 아니라 한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신경 쓰지 않게 해는 것만으로도 긴장을 완화시켜주며, 다른 선수를 견제하여 경쟁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어 팀원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을 보통 페이스 메이커라 부른다.

경주라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 페이스 메이커.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나는 이런 페이스 메이커가 되고는 한다.


“선생님 왜 그렇게 걸어요?”

동료 선생님들이나 환자 보호자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다. 환자들이 걷는 모습을 보다 무의식 중에 따라 해서 생긴 습관 중 하나로 한 달에도 몇 번씩 걸음걸이가 바뀌곤 한다. (아!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따라 걸어 보면서 어디가 문제인지 속으로 되새김해보는 과정이니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라도 불편한 감정이 생겼다면 오해를 풀어 주시기 바란다. 절대 그들이 걷는 모양을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렇게 자주 걷는 모습이 바뀌다 보니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신기해 보였나 보다. 나 스스로도 놀라운 것이, 이런 습관 덕분에 다른 사람의 걷는 모습을 따라 하는데 도사가 되었다. 치료 중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 내가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를 때도 있다. 심지어 내가 이런 습관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습관 때문에 고쳐볼까 한참 고민하기도 했는데 생각을 바꿔 역으로 치료에 이용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신경심리학자 라촐리티는 연구를 통해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원숭이가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하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움직일 때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상대방의 행동을 따라 하는 거울 신경 세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수많은 심리학자, 신경 생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며 다양한 연구로 이어지게 했다.

이 연구의 주장은 인간도 상대방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원숭이에 한정되었을 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그래서 거울 뉴런을 주장으로만 보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거울 뉴런의 핵심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따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원리에 착안해 보자면 내가 다른 사람이 걷는 모습을 따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내가 걷는 모습을 따라 한다는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했다면 치료에 응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걸을 수 있는 환자의 앞에 서서 나를 따라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좋은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그들에게 기준이 되어야 한다. 치료의 기본은 ‘정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상 범위를 기억해야 정상에서 벗어난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치료할 수 있다. 치료사가 다른 직업보다 전문적인 이유는 이 정상의 기준을 해부, 생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이다. 또한 이해하고 있는 것을 행위로 옮겨올 수 있어야 한다. 이 행위를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걸음걸이 조차 조심하게 하는 강한 동기로 만들어 준다.


내가 하는 치료는 주로 신체적인 측면에 집중되어있는 편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처한다면 절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원숭이의 거울 뉴런은 주로 운동영역에만 한정되어 있는 반면 인간은 더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고 한다. 사람은 행위뿐 아니라 감정까지 따라 하게 해주는 것으로 ‘공감’이라는 사고를 하게 해 준다. 그렇기에 재활에 있어 물리치료는 신체적인 범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병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나의 감정으로 끌고 오는 것도 치료에 포함된다. 아프다는 사실로 인해 우울한 감정, 빨리 낫고 싶어 조급해하는 감정 이 모든 것을 함께 조율해야 한다. 환자와 발을 맞춰 걷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과정인 건 확실하다.


페이스 메이커가 없으면 새로운 기록은 세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페이스 메이커는 주자가 결승선에 도달하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나는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들이 달리는 경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내가 힘든 것 정도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나의 뒤를 보고 달리던 이들이 어느덧 나를 넘어 결승선을 넘어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그 역할은 끝이 난다. 많은 현장에서 나뿐 아니라 모든 치료사가 이 역할을 자처하며 환자와 함께 달리고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재활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하고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힘들고 지칠 것이다. 그 어려운 과정을 나 홀로 견디어 간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봐 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지치고 힘든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 페이스 메이커로서 우리가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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