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와 삶
“조금만 더 천천히 걸으세요!”
오늘도 치료실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손은 마비 측에, 다른 손은 골반에 손을 얹어 놓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침대에서 운동을 마치고 걷기 시작한 지 5분밖에 안 됐지만 천천히 걸으라는 말만 10번째이다. 하루로 치면 몇십 번 일까. 한 달로 치면 몇 백 번 일까. 너무 강조하다 보니 녹음기에 넣고 치료시간에 틀어 놓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뇌를 다쳤거나 척수를 다쳐 마비 증상이 있다면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한다. 대부분 손상 정도가 경하거나 회복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 걷는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하루 기본 열 세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며 걸을 수 있는 환자는 몇 타임이나 될지. 반도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보행 치료는 다른 치료에 비해 많은 치료 기술이 집약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근력, 감각, 손상 부위, 기존의 습관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하여 현재 상태에 맞춰 치료가 진행된다. 같은 보행 패턴이라도 다른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각각에 대한 치료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잘못된 교육은 잘못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더욱이 보행은 어려운 치료에 속한다. 그중 환자들이 갖는 대표적인 특징은 걸음이 빨라진다. 본인이 빨라진다는 의식도 없이 속도가 빨라진다. 당연히 정상인에 비하면 느린 속도이다. 하지만 본인이 낼 수 있는 속도보다 빨라진다.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기엔 많이 좋아졌다며 좋아하고는 한다. 이렇게 기쁜 상황에서 멈추라고 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썩 달가운 요구는 아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강조한다. 가려고 하는 몸을 막아선다. 그렇게 나와 환자는 열심히 실랑이를 벌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균형이 무너져서, 마비 측의 힘이 떨어져서, 한 다리로 서는 것이 불가능해서. 다양한 이유로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종합해보자면 빨리 걷는 게 아니라 몸이 쏟아지는 현상이라 보면 된다. 보행 평가도 주로 속도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다 보니 좋아지는 지표로 속도를 보는 경우가 많다. 숫자는 오류에 빠지게 하는 주범이 되고는 한다. 우리의 역할은 그 오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 몸은 반복되는 과정을 기억하려 한다. 이 과정을 운동학습(Motor learning)이라고 하는데 주로 소뇌가 주된 역할을 한다. 학습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류에 대한 수정이다. 소뇌는 하려는 행위와 실제 진행되는 행위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 안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수정이 일어난다. 그런데 뇌는 수정되지 않는 반복 작업에 대해서는 저장한다. 습관이 되는 것이다. 즉 잘못된 과정이 반복되지 않게 수정해 주는 것이 잘못된 학습이 일어나지 않게 해 준다. 환자들에게 몸에서 일어나는 동작이 오류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거울을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의 손으로 직접 수정시켜 주기도 한다. 인지가 있는 환자라면 충분한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동작에 수정이 이루어졌다면 반복을 통해 학습시켜 주면 된다.
이론은 알았다면 치료에 적용해야 한다.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은 ‘당신은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라는 사실을 인지 시켜야 한다. 내가 어떻게 걷는지 고민하며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환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픈 곳이 생기고 마비가 생기고 나서야 어떻게 걷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평생을 어떻게 걷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고민한다고 해서 정확한 답을 도출해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은 움직이기 쉬운 방법으로 움직이게 된다. 마비 환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쉬운 방법으로 움직인다는 건 틀린 방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당신이 걸어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걷기 시작한 환자들은 몸이 쏟아진다. 그 사실을 모른 채 걷는다는 사실에 취해 걷는다. 본인이 절뚝거린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치료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거울이다. 거울을 통해 어떻게 걷는지를 보여드린다. 자신이 절뚝거린다는 사실을 보며 의아해한다. 만약 거울이 연속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면 영상을 찍어서 보여드린다. 영상의 가장 큰 장점은 앞, 옆, 뒤 여러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문제를 알았다면 드디어 수정할 시간이다.
걸음을 바꾼다는 건 치료 테이블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눕고, 앉고, 서고, 걷는 모든 자세에서의 치료가 걸음으로 이어진다. 다만 모든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으니 바로 걷는 과정으로 넘어가겠다. 이건 치료사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내가 강조하는 점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선생님, 지금도 걸음이 느린데 더 천천히 걸어야 하나요?”
의외로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어렵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서도 평상시 걷는 속도보다 천천히 걸어 보았으면 좋겠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행이라는 것은 큰 인지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생각하지 않는 과정이다. 그러나 느리게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나의 체중이 어디를 지나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그 덕에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고민하게 한다. 걷는다는 신체의 활동뿐 아니라 인지적 사고의 과정을 동시에 하게 된다. 이렇게 치료를 이어가다 보면 걷는 모양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진다.
앞서 말했듯 걷는 과정은 생각을 동반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동작이 반복 가능하다면 해당 동작을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 훈련한다. 어느 정도 치료가 계속하다 보면 모양이 잡히는 시점이 온다. 그럴수록 더욱 생각하지 않은 채 걷게 한다. 말을 걸기도 하고 다른 임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차츰 걸을 때 하는 지적이 줄어간다. 걷는 시간을 늘린다. 그제야 속도를 내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도 이런 치료와 맞닿아 있는 것만 같다. 모르기 때문에 빨리만 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들 때가 많다. 쏟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모른 채 무작정 속도만 높인다.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가는 그 과정을 겪고 나서야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은 치료와 다르게 누군가 옆에 붙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느끼고 갈 뿐이다. 이런 점에서는 치료가 인생보다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아가는 동안 이런 사실을 잊더라도 하나는 기억에 남겼으면 한다. 고민하고 느리게 걸어가려 하는 순간이 있어야 우리는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좋아지는 환자의 걸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