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쌓는 눈물

퇴원과 이별

나는 어릴 적 눈물이 참 많은 아이였다. 어릴 때 그 많은 눈물을 흘린 탓일까? 지금은 눈물이 잘 나질 않는다. 친구들과 슬픈 영화를 보던 중 나 혼자 울지 않는 바람에 핀잔을 들을 정도니. 얼핏 보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점에 있어서는 단점으로 비칠 수 있지만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직업의 특성상 극한의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치료는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감성에 휩쓸리지 않고 근거에 맞춰 치료가 가능하다. 어설프게 감성만 자극되면 의도하지 않게 힘이 들어가거나 가능한 기능 이상의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안타깝다는 이유만으로 환자를 걷게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사람이다. 감정에 흔들리는 순간이 하나 둘이 아니다. 때로는 눈물이 흐르는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차분하게 위로할 수 있는 나라서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세상엔 어려 눈물이 있다. 기쁨, 슬픔, 환희, 감사. 병원에서 일하며 다양한 눈물을 만났지만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눈물은 작별의 눈물이었다.


새롭게 만나게 된 환자는 미소가 정말 인자했다. 목관을 차고 있어 말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항상 웃음으로 인사를 해 주셨다. 이미 나를 만나기 전부터 많은 재활을 거친 분이셨다. 발병 시점도 일정 기간 지나 큰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언제나 집에 가고 싶어 하셨지만 바람에 비해 신체 기능뿐 아니라 내과적 컨디션이 좋지 않으셨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생활을 이어나가는 분이셨다. 간병은 언제나 남편 분께서 직접 해 주셨다. 항상 차분한 듯 보이셨지만 행동 하나, 하나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의 치료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치료사로서 만족스러운 치료 경과를 보여주시지는 못했지만 뭐랄까,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의 기분이랄까. 나이, 성별 모든 것을 뛰어넘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 미소는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당시의 난 정말 열심히 치료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치료 지식을 동원해 치료했다. 필요하다면 무거운 치료 도구를 몇 번이고 옮겼다. 집에 가면 비슷한 케이스의 문헌을 찾아보며 고민했다. 다음 치료 시간이면 전 날 저녁때 찾은 치료 방법을 실행으로 옮겨 보았다. 그분께 쉽지 않은 과정이었겠지만 언제나 웃음으로 잘 따라 주셨다. 조금의 발전이라도 보일 때면 환자와 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언제나 치료를 끝나고 휠체어에 앉혀드리는 시간에 내가 아는 모든 희망적인 말들을 전해드렸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나의 치료 중 그때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치료사로서 부족했던 걸까. 병원은 모든 사람이 좋은 경과만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 그렇더라도 이 사실이 그분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이런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퇴원 일주일 전부터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하셨다. 치료실에 올라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병실에 가서 치료를 해 드려야 하는 날이 계속됐다. 여전히 나를 보면 웃어 주셨지만 몸은 좋지 못한 현 상태를 거짓 없이 보여주었다. 가래가 껴서 숨도 쉬기 힘든 목관, 계속되는 열로 인해 붉어진 얼굴빛, 주사기를 얼마나 꽂았는지 파랗게 터진 피멍으로 도배된 팔.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 퇴원 전 마지막으로 보는 날, 그 날까지도 마음의 아픔은 가시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치료실에는 올라오지 못하셨다. 착잡한 마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 계셨다. 병실로 들어오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신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고 치료를 한다. 마비 측 발과 다리를 움직여 드린다. 컨디션이 허락하는 안에서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진행한다. 째깍째깍. 점점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는 알림을 보내온다. 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우리가 마지막임을 알리는 것뿐. 담담하게 이제 우리의 치료가 종료되었음을 알려 드린다. 다음 병원에서는 조금 더 좋아 지시길, 더 좋은 치료사를 만나길 바란다는 나의 진심을 전한다. 차갑고 부은 손을 살포시 만져 드린다. 여우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그렇게 끝냈다.

바로 그 순간, 숱한 미소를 지어주던 얼굴이 눈물로 뒤덮여 버렸다. 마지막임을 모르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전한 사실에 심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울음으로 인해 가래가 끓고, 숨을 쉬기 힘들어져도 그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컨디션 안 좋아진다며 보호자와 내가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슬픈 눈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 였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더욱 심해질까 숨 넘어갈 듯 우는 그분을 뒤로하고 병실을 떠났다.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약해진 몸에 찾아온 좋지 못한 증상들이 헤어짐을 더 안타깝게 한다.


마지막임을 알렸을 때 쏟아지는 눈물을 보며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정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의 수고와 열정이 누군가에겐 이별을 준비하는 어려움을 쌓아가게 간다는 것이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 실패한 순간들이 아니 였다는 안도를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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