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그리고 고양이
지금 당장의 이 감정을 오래 자랑하고픈 마음에 정말 오랜만에 화면을 두드린다. 짧다면 짧겠지만, 결코 짧지 않았던 인턴 기간 동안 내 글에 대한 감정적인 피드백을 들었다.
입장 차이가 존재함을 알지만, 나는 회사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던 인턴이었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신입 포지션도 아니었고, 인턴 후에 정규직 심사를 기다려야 했던 인턴이었다. 내게 전해 주는 회사에 대한 현재 상황과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의 내용을 모른 채 회사를 홍보하는 글을 썼다.
글을 가져 갈 때마다 추가되는 회사 관련 내용에 조심스럽게 초안 작성 전에 관련된 정보를 여쭤 보았으나, 권한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지금 주어진 정보로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철저히 인턴이라는 선 밖에서 아등바등 선 안 쪽 내부의 글을 써야만 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자만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더 검색해 보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막상 내 글에 빠져 있던 건 내게는 준 적 없는 ‘회사 내부에서만 가지고 있는 일정에 대한 정보’였다. 피드백 후 빠져 있던 정보가 상사의 손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볼 때를 오래 잊지 못할 듯하다.
인원이 적었던 팀이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이 너무나도 눈에 잘 들어왔다. 늘상 나의 업무적인 태도를 자신의 감정에 맞춰야만 한다는 분도 계셨고, 욕심 내며 일하라고 하셨던 분도 계셨지만, 욕심 내지 말라고 하셨던 분도 계셨다.
스타트업이었던 만큼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일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내부 사람들의 실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인턴이었던 내 잘못으로 변질되어 혼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했던 부분은 참 힘들었다. 이로인해 자르겠다, 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내 모습이 새삼 안쓰러웠다. 그토록 중요한 일을 회사 정보도 정확히 전달해 주지 않았던 인턴에게 맡기는 게 과연 맞았을까, 인턴에게 책임이 있다고 잔뜩 굵어진 목소리로 얘기하는 게 옳은 회사의 모습일까, 싶었다. 당연하게도 전혀 안내받지 못했고 권한 조차 없었던 업무이고, 이번에도 정규직의 실수를 내가 안았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아쉬운 말을 했다.
사회초년생인 내가 마주한 기업에 대한 인상은 사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들 모두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 속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자신도 타인 만큼 소중하고,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중요성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었기에 그랬을까. 그래, 이제 남은 한 학기를 충분히 만끽하다가 졸업하자.
짐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회사 경험을 하고, 잘 될 줄만 알았는데, 사회에서 가장 힘겨운 대상은 일도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배우고, 나는 좋은 팀원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만 더욱 굳건해졌다. 유의미하고, 배운 점도 많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은 왜일까.
요즘 나의 주변과 지금 우리의 사회가 보였다. 툭- 하면 그만두는 신입들, 알바보다는 배움에 열중하는 학생들. 힘겨운 취준을 끝내고 도착한 회사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애써서 온 이곳에는 그다지 나를 반기는 사람 또한 없고, 나는 감정적인 말들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때, 이제 우리는 이곳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인턴 근무 당시 대기업 출신 분께 유독 많은 말을 들어서 기업 규모에 대한 기대도 그다지 남아 있지는 않다. 그저 나라는 사람과 잘 맞는 회사만이 기대될 뿐이다. 맞는 회사는 분명 존재하니, 나도 좋은 어른을 만나 볼 수 있을 테지.
사람으로 인해 유지되는 기업이라면, 그 사람에게 남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 또한 기업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안 쪽으로 가기 위해 나는 열심히 뛰었으나, 문은 견고했다면, 과연 우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 칭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세대가 사회로 나옴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관점이 점차 새로워지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간절하지만, 나 자신을 미뤄둘 만큼의 분위기를 견딜만한 이유는 늘 의문을 지니고 있다. 기라면 기었던 그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 ‘다 그렇게 사는 거다’라는 조언을 안겨주지만, 지금은 기라면 기어야만 하는 그 문장 자체에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는 우리임을 기업도 머지않아 이해하며 발판을 마련해 주리라 믿는다. 또, 우리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닌, 차마 견딜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던 회사와 그 속의 사람을 되돌아 보아야 할 시대인 듯하다.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던 나의 인턴 생활을 되돌아 보면, 뭐가 그렇게 죄송하고, 무섭고, 벌벌 떨었을까 싶다. 알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적인 지적이었다면,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제가 받은 정보다 아니어서 기재하지 못했다, 알려 주시면 더 잘 마무리해 보겠다고 처음부터 말해 볼걸. 이런 아쉬움이 남는다. 집에 오는 길에 펑펑 울면서 엄마랑 전화했던 기억 또한 잊지 못하겠지. 남은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사회인으로서 나의 페르소나를 구상해 보아야겠다.
다들 놀라고는 하는데, 나는 도마뱀과 고양이와 함께 산다. 도마뱀 ‘도리’가 먼저 우리 집으로 찾아왔고, 이후 고양이 ’살찐이‘가 막내로 찾아왔다. 그렇게 가족이되었다. 살찐이가 도리를 너무 좋아해서 고마우면서도,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도리를 잠깐 안아 보려 하면 살찐이가 도리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고는 해서 귀엽고 웃기다.
반려동물은 굉장하다. 누가 파충류가 차갑다 했던가. 회사에서 잔뜩 혼나고 눈이 시뻘게져서 집에 왔을 때 도리와 살찐이가 나를 가만히 자신들의 눈에 담았다. 작은 눈동자 속 내가 비친다는 이유 하나로 무한한 위로였다.
다행히 둘은 굉장히 친해서 잘 때에도 종종 같이 잔다. 다만, 나는 저 사이에 낄 수 없다.
오늘 아침에는 살찐이의 첫 유치가 빠졌다. 너무나 신기한 감정이었다. 나 역시 어릴적 이빨을 빠진 경험이 있으면서, 살찐이의 빠진 이빨은 너무 대견스럽고 소중했다.
회사를 나온 후 가끔 견뎠어야 했나, 이런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는데, 오늘 이후로 잠잠해질 듯하다. 회사에 다녔다면 나는 지금 이 소중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
다들 내게 잘 나왔고, 나오는 게 맞는 회사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건네 준 그 말들을 이제야 실감한다. 다정한 마음을 받았으니, 나는 사회인으로서 다정함을 결코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잃지 않아야지. 내가 받은 다정을 그렇게 보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