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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취미가 없냐

20편의 '취미가 뭐예요'를 마무리하며.

by 메이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았던 나는, 벤쿠버에서 ‘취미부자’로 지냈다. 친구는 없었지만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 순간들은 나의 지난 20편의 ‘취미가 뭐예요’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직 글로 남기지 못한 취미들도 있다. 가까운 동네는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먼 곳은 버스에 실어 자전거를 타고 벤쿠버를 누비는 것도 즐긴다. 짐을 정리할 시기에 뒤늦게 테니스 라켓을 사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와 함께 테니스를 치고, 주말마다 떠나는 하이킹까지—일상 속에 스며든 이 취미들은 지금 시간을 더 소중히,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모든 취미가 아름답기만 했던 건 아니다. 중고물품 가게를 어슬렁거리며 보물을 찾는 취미를 갖고 있지만, 득템이라 생각한 물건이 새 제품과 큰 차이 없는 가격이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것을 발견하고선 물건 살 일이 있을 때 중고물품가게부터 찾는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 같아 작아졌다. 겁없이 도전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당황한 일도 많았는데 수영 숨쉬기가 잘 안 돼 물을 잘못 마셨을 땐 뒷통수 끝까지 찡하게 저렸고, 처음 타본 보트에서는 노를 제대로 젓지 못해 떠내려갈까 두려웠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트라이애슬론 얘기를 하자, 상대방은 100번 넘게 완주한 지인이 있다고 대답했다. 겨우 한 번 해본 내가, 그것도 바다수영도 아닌 실내 수영장에서 짧은 코스에서 완주한 내가 얼마나 하찮아 보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해본 적 있음’과 ‘해본 적 없음’의 차이를 알기에 나는 늘 새로운 것에 겁 없이 도전하기를 계속해나갔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금 이나이에 취미로 돈 벌것도 아니고 잘하고 못하는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는 그저 남은 내 인생이 조금 더 즐겁길 바랄 뿐이다.



아빠는 아코디언 연주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했고, 내가 악기를 찾아보고 강의까지 알아봐 등록해드렸지만 결국 슬그머니 포기하셨다. 엄마는 60이 넘어 팬플룻을 시작하셨는데 수업에서 악기연주도 처음이고, 악보도 못 읽는 분은 엄마뿐이었다고 한다. 벤쿠버에 여행 와서도 텅 빈 방에서 팬플룻을 연습하시던 엄마는 결국 강사 자격증까지 따고, 공연도 다니신다. (나도 플룻을 불지만 팬플룻은 입술 위치를 계속 바꿔야 해서 훨씬 어렵다.) 겁 없이 도전하고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 엄마를 닮았나 보다.


늘 혼자 하던 취미생활. 하지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더 가까이,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나의 취미생활은 계속 될 것이다. 벤쿠버에서의 시간을 떠올려주면서.



엄마에게 음계를 알려주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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