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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언제 잘하게 되나요?

by 메이

벤쿠버에 와서 골프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저 습관처럼 중고물품 가게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저렴한 가격에 골프클럽 세트를 구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골프 인생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최저가 가내수공업 골프’. 벤쿠버에서 가장 저렴한 장비를 마련했고, 따로 레슨을 받는 대신 동네 골프 연습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스윙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어깨 너머 배운 동작들을 하나씩 따라 해보는 식으로 시작했다.



“저 빨간 깃발까지만 보내면 골프코스로 데려가 줄게.”라는 말을 들은 것을 계기로, 나의 목표는 바로 빨간 깃발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껏 쳐봐도 공은 여전히 내 발밑에 툭 떨어질 뿐이었다. 금세 닿을 것만 같았던 그 빨간 깃발은 생각보다 멀기만 했고, 내게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처럼 느껴졌다.


그저 벤쿠버에서 골프를 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나에게도 변화의 순간은 찾아왔다. 지인 부부와 함께 처음 라운딩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 부부는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골프를 쳐왔고, 캐나다에 와서도 꾸준히 연습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러 가지 취미를 두루 섭렵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나와는 달리, 오직 골프라는 한 우물만 묵묵히 파고 있는 진지한 사람들이었다.


못하는 골프였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더 안 풀렸고, 공 대신 땅을 치는 일이 잦아 허리가 며칠 동안 욱신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팠던 건 라운딩을 마친 후 남편이 전해준 이야기였다. 남편의 지인이 “와이프는 왜 그렇게 골프를 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내 스윙이 그렇게까지 이상해 보였던 걸까. 그 한마디가 허리 통증보다 더 깊고 날카롭게 가슴 속을 찔렀다.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까지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왔지만 그날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취미라고 해도 내가 너무 못하면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밖에 없고, 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참을 수 없다. 결국 다음 라운딩을 디데이로 정하고, 그때만큼은 달라진 모습을 꼭 보여주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새로운 마음으로 심기일전한 덕분일까, 이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골프는 여전히 쉽지 않다. 티박스에서 처음 치는 드라이버 샷이 150야드를 가든, 그린에 올라간 공이 홀에서 단 5cm를 빗나가든, 클럽을 꺼내 한 번 친 건 모두 같은 한 타로 계산된다. 살짝 그린 위에 얹겠다는 마음으로 친 공이 정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가기도 하고, “sit, sit, sit!” 하고 간절히 외쳐봐도 공은 내리막을 타고 속절없이 굴러 내려가 버린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국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1번이 안 되면 2번을 하면 된다. 오늘은 수영을 하다가 어제의 골프를 떠올린다. 벤쿠버에 처음 와서 수영을 시작했을 때, 나는 10미터도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시절 유튜브에서 ‘수영 호흡법’, ‘숨 쉬는 방법’ 같은 영상을 찾아보고, 그걸 따라 하며 수영장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씩 익혀가다 보니, 오늘의 50바퀴도 가볍게 돌 수 있게 되었다. 골프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나아질까.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골프는 왜이렇게 어렵기만 한걸까. 수영이나 자전거는 한 번 몸에 익히면 시간이 지나도 할 수 있지만 골프는 이번 홀을 잘 쳤다고 해서 다음 홀도 잘 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같은 클럽으로, 같은 자세로, 같은 느낌으로 쳤다고 생각해도 매번 거리와 방향이 다르다. 골프공 앞에 서 있는 순간, 괜히 긴장이 되어서 그립을 잡았다 놓았다 다시 잡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제 벤쿠버에도 본격적인 골프 시즌이 시작됐고, 그린피는 점점 비싸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에 비하면 1/3 수준이지만, 예약 시간 잡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귀국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서, 벤쿠버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나도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춘 골퍼가 되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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