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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Jul 04. 2024

부산의 비, 일산의 햇살

아기 고양이의 700km 사랑 릴레이

부산의 길거리에서 발견된 작은 생명체는 이제 일산으로 간다.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반도를 가로지르는 아기 고양이의 생존기.




처음 사람의 눈에 들었을 때 그건 두더지의 사체처럼 보였다. ‘그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생기라고는 느끼기 어려운 작은 덩어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갔던 학생들은 아주 가까이에서야 그것에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다. 손에 있던 옷가지로 빗물을 닦고, 가능한 체온이 유지되도록 감싸 안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생후 2주 추정, 몸무게 300그램. 동물병원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다. 작고 가녀린 몸뚱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붕 없는 길생활을 하던 고양이들은 비를 맞으면 이소를 감행하곤 한다. 아마도 새끼를 여럿 데리고 비 피할 곳을 찾던 어미가 한 마리를 놓쳤을 것이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뒤쳐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고양이는 살았다. 도움을 줄 만한 이의 눈에 띄는 것. 그것도 선천적인 복이라면 복일까.


아기 고양이의 이름은 ‘정실이’가 되었다. 당장 필요한 조치를 받고 퇴원해도 될 만큼 회복되었으니 계속해서 병원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입양은 몰라도 임시보호를 해줄 곳이라도 간절히 필요했다. 학생들은 본인의 집이나 지인의 집을 먼저 알아봤지만 사정이 허락되는 곳이 없었다. 허공에 손을 뻗어보는 마음으로 온라인에도 소식을 알렸고, 그게 진에게까지 닿았다. 진도 당장 아이를 데려올 여건은 못되었기에 함께 입양/임보처를 구해보기로 했고, 마음이 닿아 드디어 임보처가 정해졌다. 그런데 위치가 목포다.



정실이는 이제 생명의 태를 완연히 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너무 약했다. 혼자서 밥을 먹을 정도가 아니었기에 2시간마다 인공포유를 해줘야 했다. 목포의 임보 가정에서는 그것을 책임져 주겠노라 약속했다. 아이에게 ‘콩’이라는 애칭을 붙이고 정성스레 보살펴가며 생을 이어주었다. 콩이는 물을 머금고 부풀어 오르는 콩알처럼 포실포실 살이 올랐다. 임보 가정에는 엄마 아빠 말고도 콩이를 돌봐준 가족들이 있었다. 바로 언니 오빠 강아지들. 아무것도 모르는 콩이가 손발 되는 대로 흔들어 가며 자라는 동안 다양한 언어를 배울 만했다.


목포에서의 한 달여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콩이의 입양처가 정해졌다. 이번에는 일산이다. 먼 거리지만 사랑으로 받아줄 준비가 된 가족들이었다. 문제는 이동이었다. 일단 목포부터 일산까지 한 번에 이동봉사를 해줄 사람이 마땅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동 대작전이 시작된다. 일단 목포의 봉사자님이 전주까지 와주시고, 진이 전주에서 아이를 인계받아 입양처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목포 봉사자님의 일정과 입양처의 준비 날짜가 맞지를 않았다. 결국 아이는 진의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가는 방안으로 결정되었다. 기나긴 이동시간을 견뎌야 할 아이에게도 일정을 쪼개는 편이 나을지 몰랐다.



진과 달리 나는 전주가 처음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루질 못했다. 대신 이번에 전주에서 아기 고양이의 원맨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약속장소인 동물병원에서 만나자마자 콩이는 사람을 향해 달려 나왔다. 아직 마음만큼은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를 달싹거리며 사람의 냄새를 맡고 안겨있기를 좋아했다. 진과 나는 콩이가 그동안 강아지 언어로만 대화하다가 고양이 언어를 쓰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지만, 콩이에게 고양이적 도도함이라고는 없었다. 모든 존재를 향해 뻗어나가는 사랑의 언어가 있었을 뿐.


혜진 씨에게 줄 전주의 명물 초코파이를 사러 한옥마을에 들렀다가 거기서 끼닛거리까지 챙겨가지고 얼른 출발했다. 우리가 밖에 있는 모든 시간이 아이에게 이동일 테니 그걸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다. 차 안에서 아이의 상태를 살피느라 가만히 관찰하는데, 혜진 씨에게 그냥 콩이를 보여주면 초코파이를 안 사도 됐던 게 아닐까 싶었다. 달콤한 까만색과 촉촉한 하얀색이 알맞게 섞인 이 친구라면 초코파이의 맛을 오감으로 전할 수 있었을 테니까.


무사히 진의 집에 도착한 콩이는 방 안에 준비된 격리장에서 하루를 잘 보냈다. 밤에는 침대에도 올라와 진과 살을 맞대고 고되었던 하루를 서로 안아주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에 곧바로 일산의 집으로 출발했다. 이동에 이동에 이동. 길고 길었지만, 이제는 정말 다 왔다는 말을 되뇌면서. 가족들은 첫눈에 ‘아들, 아들!’ 소리를 연발하며 정답게 콩이를 반겨주셨다. 이번에는 다시 ‘콩식이’라는 이름을 가족들에게 받았다. 엄마 아빠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첫째 고양이 까미의 얼굴이 프린팅 되어 있었다. 이제 곧 그 가슴에 콩식이가 함께 있는 사진이 담길 상상을 하며 진은 안도했다.



동물들에게는 사람의 이동수단을 통해 오래 움직이는 일이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일 거다. 부산에서 일산에 이르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 가족을 찾은 고양이. 이 거대한 이동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까운 곳에도 좋은 입양처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먼 곳으로 여러 사람의 노력을 더해서 갈 일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콩식이를 보며 그런 생각은 자연히 고쳐졌다. 평생 함께할 가족을 만나는 일에 ‘이렇게까지’는 없는 것이다. 


처음 구조해 준 학생들부터, 수유를 해준 임보 가족들, 진처럼 이동봉사와 입양 홍보에 힘을 보탠 사람들까지 그 모든 애정과 복이 정실이의 것이었다. 부산 사투리, 목포 사투리, 개의 언어, 사람의 언어를 두루 익히고 정실이, 콩이, 콩식이 여러 이름을 거쳐 온 고양이. 그 길에 위에 담겼던 사랑이 이 친구의 당당한 삶을 뒤받쳐 주기를. 이제부터 고소하고 담백한 ‘콩길’만 걸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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