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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Jul 08. 2024

흩어진 땅 위로, 장마와 고양이들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야기 3

빗물로 유리창이 아득하게 가려진다.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 고양이를 만나기 전에도 고양이적 인간이었던 나는 야외 활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은 더욱이 집에만 있었으니 심각한 호우 경보도 내겐 차창 밖의 일이었다. 


올해도 역대급 장마가 예고되었다. 당연히 그건 재개발이 진행 중인 삼색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마을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공사지역 밖으로 옮기는 중인 진과 혜진 씨는, 꼼짝없이 산에서 이 장마를 맞게 되었다.




굵어질 빗줄기를 대비해 밥자리를 보완해야 했다. 이미 대부분의 밥자리에 미니텐트를 씌워놓기는 했지만 바람이 걱정되었다. 올 장마는 유독 강풍을 동반한다는 예보가 야속한 경고처럼 들렸다. 산으로 향하는 밥자리 이주 통로 중 중간거점으로 삼은 곳에는 캠핑용 타프를 설치했다. 튀어 들어오는 빗물을 막아줄 수 있게 가능하면 너른 지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묶어, 나무에 단단히 고정했다.


다음 문제는 바닥이었다. 위에서 오는 비를 막아도 옆에서 흐르는 빗물에 땅이 다 젖어버리면 큰일이었다. 진과 혜진 씨는 당근마켓과 중고매장, 플라스틱과 나무를 가리지 않고 팔레트를 공수했다. 사이즈와 가격을 따져보고 용달을 부르고, 모자란 손으로 부지런히 그것들을 날랐다. 그 위에 밥자리를 올리고 미니텐트와 함께 단단히 고정했다.  


당장 내일부터 쏟아진다는 소식에 전날까지 두 사람은 산기슭의 모든 밥자리를 돌보느라 하루종일 뛰어다녔다. 정작 예보는 빗나가고 맑은 날이 며칠 더 이어져 허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해야 했던 작업이었다. 아무렴, 하루라도 비 오는 날이 줄어준다면야.



그리고 결국 비가 때렸다. 때렸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매섭게 쏟아졌다. 빗물 샤워를 하며 밥자리를 다닐 수도 없었거니와 고양이들도 그 비를 뚫고 밥을 찾아올 수는 없으니 이렇게 퍼붓는 동안에는 다 같이 숨을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친 틈을 보아서 곧장 출동할 수 있게 대기하면서.


그러다 결국 사고도 생겼다. 삼색마을 곳곳은 이미 전과는 달라져 있다. 작업을 위해 여기저기 땅이 갈려서, 있던 길은 막히고 없던 길이 생겼다. 헤집어진 흙바닥에 비가 내렸으니 그 길이 온전할 리 없었다. 그 위를 오가다가 진의 자동차 바퀴가 공돌아버렸다. 혼자였던 진은 근처의 널빤지나 바위를 대보며 애를 썼지만 차는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참을 진땀 빼다 결국 보험사에서 출동하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길이 아닌 데를 가니까 빠지지요.” 차를 구해준 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길을 다 없애고 있으니까, 길이 아닌 데로라도 가는 거지요.



예초기와 전동가위 등 장비를 처음 갖출 때는 보호대에 헤드기어에 잘 착용하고 작업하기도 했다. 우리끼리 하는 일이지만 어쩐지 거창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서, 그 모습에 함께 웃기도 했다. 그런데 어디 일이라는 것이 매번 그렇겠는가. 없는 시간 쪼개서 밥자리를 돌보고, 다급한 일이 생겨 작업하다 보면 보호대는커녕 맨발로 작업하기도 일쑤다. 아직까지 큰 사고는 없었지만 아찔했던 적은 벌써 여러 번이다. 썩은 나무가 바로 옆으로 쓰러지고, 나뭇가지에 눈이 찔릴 뻔하고. 그럴수록 다시 되뇌어야지. 우리가 건강해야 고양이들도 챙길 수 있다. 장비를 잘 챙기자.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게 대단한 부귀영화가 아니다. 그저 우리 곁에서 나고 자란 생명이 비를 피하고 자기 먹을 것을 가질 수 있었으면. 자기 몫의 지붕과 체온을 가질 수 있었으면. 그뿐이다. 진과 혜진 씨가 밥자리 주변으로 부지런히 덮개를 마련해 주었어도, 쏟아지는 비 앞에서 고양이들은 다시 공가로 찾아들어간다. 고양이들은 사람보다 3,4도 정도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한다고 하니 그건 자연스러운 대피일 것이다. 장마가 가기 전에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빈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 장마 때도, 과연 그런 집이 남아 있을까.



올해 장마는 폭염과 호우를 번갈아 가면서 하루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이어질 거라고 한다. 겪어본 적 없는 이상기후가 매년 다가오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들을 따라가 보면 언제나 인간의 무슨무슨 짓이 있다는 건 물론이다. 나고 자란 곳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된 고양이들의 운명도 그저 자연스럽게 생긴 일은 아니다. 땅을 파헤치고 누군가를 터전에서 내쫓는 일이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생명을 구하는 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리라 믿는다.


비를 피해 먹고 잘 수 있는 안온함이 조금은 더 너르게 허락되기를. 오늘도 찬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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