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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Jul 11. 2024

우리는 입양 신청자를 의심한다

고양이를 입양하려는 분에게 드리는 편지

“메이 입양신청서가 새로 들어왔어요.”


진이 이런 톡을 올려주면 혜진 씨와 나는 아지트에 접속해 파일을 열어 본다. 각자 신청서를 읽어보면서 걱정되는 부분이나 궁금한 점 등을 담아 코멘트를 달아둔다. 그러면 진은 그 내용을 참고해서 질문사항을 정리한 뒤에 입양신청자와 통화 면접을 진행한다. 방묘창과 방묘문 설치는 가능한지, 고양이가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어떤지, 어떻게 이 고양이를 입양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등등 크고 작은 이야기를 두루 나눈다. 면접이라기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떤 분인지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시간에 가깝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고려와 고민이 서로 오간 뒤에 입양 여부를 결정한다.



“고양이 입양하려고요. ‘ㅇㅇ이’ 아직 있나요?”


마치 재고가 남은 상품을 문의하는 것 같은 DM도 왕왕 도착한다.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아이인 것 같으니 신청하면 곧 데려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꽤 많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신청자의 집안 환경과 경제적 상황, 고양이 양육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과 의지, 혹시 모를 변수에 대한 안전장치까지 두루 확인한다. 잘 준비된 신청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신청자가 당연히 있다. 당연히, 그런 신청자에게 아이를 보내지는 않는다.


당연히, 우리 고양이 사무실도 아이들에게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고양이만을 위해 꾸려진 공간이고, 세 사람이 고양이의 안위를 계속해서 살피고 있다. 우리에게 한 번 온 고양이는 입양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입양신청자도 그런 책임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아닌 사람, 그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신청자가 반드시 있다. 그런 신청자에게 ‘자 얼른 고양이 데려가세요’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제 오늘의 질문.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바로 어제도 인스타 피드에서 이런 소식을 보았다. 저 ‘파주 입양 학대 사건’의 피고인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이르는 기간에 상습적으로 고양이와 개를 입양한 뒤 학대하고 목숨을 앗아갔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범행 목록을 보다가 그것들 사이의 간격이 불과 2, 3일인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숨이 막혔다. 분명 어떤 입양 절차가 있었을 것이지만, 적당한 말로 속여서 데려가는 수법도 점점 늘고 있다. 악마에게 아이를 입양 보낸 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짐작하기가 힘들다. 이 사건만이 유별난 일이 아니다. 2020년 기준 동물보호법 위반 건수가 992건(동물권 행동 <카라>)이니, 이걸 365일로 나눠 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동물 학대자가 학대자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지 않는다. 학대자가 아니더라도 준비가 덜 된 사람, 양육 욕심은 있지만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 고양이 반려생활에 대해 너무 모르는 사람, 모두 실제로 고양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아니, 충분히 준비가 된 사람도 고양이와 새로 가족을 이루다 보면 온갖 문제를 마주한다. 사람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상황에 대해 대처할 수 있고 변화를 만들 수 있을 테지만 고양이는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맡겨져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하다가 파양 되거나 유기될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나마 파양의 경우 반드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도록 하고 있고, 우리는 다시 입양처를 알아보거나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지만 입양을 가있던 동안 고양이가 놓쳐버린 진짜 가족을 찾을 기회는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그래서 입양을 보내는 입장에서는 입양 신청서와 입양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게 된다. 고양이보호협회 버전도 있고, 단체나 입양 보내는 분마다 만들어 두고 있는 신청서와 계약서 양식이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빌려 사용했지만 점점 우리만의 양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입양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다르고, 입양신청자에게 궁금한 점, 입양자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약속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입양신청서와 입양계약서는 우리 고민의 정리본인 셈이다. 동시에 신청자에게 우리와 함께 깊이 고민해 달라는 요청서이기도 하다.



진은 항상 입양신청자에게 예의를 갖추고 부드럽게 대화한다. 하지만 동시에, 입양 절차 진행 중 신청자에게서 의아한 부분이 느껴지면 진은 그분을 의심한다. 충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말만 자신 있게 하는 건 아닌지, 혹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입양하려는 건 아닌지. 과거의 일을 들춰묻기도 하고 가족의 사정을 듣고자 할 때도 있다. “진아,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는 건 대단한 무례야.” 속도 모르는 나는 이런 소리를 자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신청자에게서 결격사유가 발견되고, 입양 갔던 아이가 파양 되고, 주변에서 입양 사고 소식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내 고상한 예의관은 순진한 것이 되었다.


예의를 지키는 것과, 고양이를 지키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무례를 무릅쓰고, 의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고양이를 지킨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안다. 애초에 그런 질문이 그 신청자 개인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와는 무관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니, 진이 입양신청서와 전화 면접을 통해 따져 묻는 그 수많은 조건들은 어쩌면 이런 편지의 다른 말일지 모르겠다.


고양이를 입양하려는 분에게,


우리는 당신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전혀 몰라요. 전혀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우리는 하나의 생명을, 그 평생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냉큼 믿을 수 있겠나요.


나의 그 예의가, 그 순진함이 이 아이에게 어떤 피해로 다가왔을 때, 나는 무슨 수로 이 아이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아야 하나요.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이 아이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텐데요.


무례를 용서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우리와 함께 당신도, 당신 자신을 의심해 주세요. 용기를 내어 의심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고양이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어주세요. 우리가 끝까지 함께할게요.


이 아이를 알아봐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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