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은 고양이가 세상을 보는 법
시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 친구들은 그 안에서 부여받은 고유번호로 불린다. 건강상의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치료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진행되지 않는다. 고양이의 경우 공고 기간 동안 적합한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방사하거나, 혼자서 살아갈 만큼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안락사되기도 한다.
써니도 그 안에 있었다. 양쪽 눈을 가린 채.
언젠가 고양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비교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고양이의 안구를 통해 본 세상은 채도가 낮았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비해 색 구분은 덜 되었다. 대신 빛이 없어도 사물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는 좋은 눈이라고 영상의 내레이션은 설명했다. 고양이의 눈에 담긴 무채색의 세상도 매력적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써니의 세상은 다른 고양이의 세상보다 조금 더 흐릿하다. 써니는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혹은 아주 약간 볼 수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양안 시력 유실. 보호소에서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 진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자매 고양이와 같이 구조되었는데, 손도 안 타고 급한 치료가 끝난 그 고양이는 방사되었다고 했다. 이 아이는 눈 상태가 너무 심각해 당장 방사하기가 어려워 미루던 중이라고 했다. 진이 조심스레 손을 건네보았을 때, 써니는 극도로 경계심을 보이며 하악질을 하고 손을 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낯선 장소와 낯선 촉감. 감각되는 모든 것이 두려움 아니었을까.
진은 눈 상태라도 정확히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병원 몇 군데를 다니며 안구 검사를 받았다. 증상은 검구 유착이었다. 허피스 바이러스 등을 앓으면서 눈에 염증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분비된 물질이 눈의 각막에도 붙어버려 뿌연 안경을 쓴 것처럼 앞이 가려져 보인다고 했다. 다행히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는 걸로 보아 시력은 있으나, 덮여있는 조직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거라고.
결국 각막에 붙은 것들을 다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그 자리에 미세한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고 그걸 회복하기 위해 다시 다른 막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마치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메워지듯. 그렇게 막이 생겨버리면 결국 재발한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될 가능성은 반반. 얇은 렌즈를 사용하거나 조직을 잘라낸 끝을 살짝 매듭지어 안쪽으로 붙여보는 등의 방안도 있지만 모든 건 수술 뒤에 지켜봐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아이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진은 더더욱 시보호소에 아이를 내버려 둘 수는 없게 되었다. 진은 아이의 치료과 거취를 책임지기로 했다. 써니는 우리 사무실로 오게 되었다.
내가 전해 들었던 써니는 앞이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였다. 나는 약간 몸이 굳은 채로 격리장으로 다가섰다. 소리 없이 다가가는 편이 좋을까, 아니 살짝 소리를 내어서 알려주는 게 좋을까? 써니의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느껴질지 몰라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써니에게 나는 너무 크고 낯선 존재가 아닐까. 격리장 문을 열고 손을 가까이 가져가 잠시 기다렸다. 써니는 내 기척에 처음에는 놀라며 구석으로 몸을 더 밀어 넣었다. 그러다 코를 들썩이며 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다가와 내 손의 냄새를 맡고 얼굴을 대어 체온을 느껴보기도 했다. 나도 써니가 편안해할 만한 목과 등을 조금씩 만져주었다. 예상밖으로 순조로운 첫인사에 나는 오히려 놀랐다.
그렇게 며칠 만에 써니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었다. 써니는 냄새만으로 나와 진과 혜진 씨를 구분했고, 각자와 친해진 만큼 다르게 반겨주었다. 격리장 밖으로 손을 내저으며 사람을 부르기도 하고, 다가가면 손에 얼굴을 비비며 몸을 뒤집는 애교냥이가 되었다. 유리창이나 작은 구조물 앞에서는 여전히 헤매고 살짝 부딪히기도 하지만, 생각보다는 빛을 구분해서 나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격리실의 다른 고양이들과도 인사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아도 어엿한 하나의 식구로서 몫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곧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보는 세상, 써니가 보는 세상이 어둡고 닫혀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마 써니는 우리가 구분하지 못하는 미묘한 빛의 변화와 그림자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볼 것이다. 냄새와 소리, 진동과 온기를 통해 자기만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느끼고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이라는 걸.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세상은 훨씬 다채롭다는 걸, 써니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