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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Apr 10. 2024

동시를 통한 위로

 《넌 바위 낼게 넌 기운 내》안진영. 2019. 문학동네.


<시험>


그래, 나에게

문제가 있지


분명 나에겐

문제가 있어


문제가 없다고는

안 할게


그러나

언젠가는

풀릴 거야


어떻게든

풀릴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문제없어


76쪽.




이런 생각하신 적 있으세요?

'왜 나에게만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거지?'

살면서 문제 한 두 가지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유독 자신에게만 어려운 문제가 닥치는지 원망해 본 적은 없으세요?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문제를 겪을 때가 종종 있어요. 문제를 안고 사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적도 꽤 있고요. 작년엔 아이들과 위 동시를 함께 나누었어요. 참, 저는 고학년 아이들과 나눌 동시를 고르는 두 가지 원칙이 있어요

 

첫째. 내 마음에 울림이 있을 것.

둘째.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할 내용이어야 할 것.

 

이렇게 딱 두 가지를 우선 놓고 동시를 고르면 거의 성공적인 동시 수업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 동시의 경우는 한 가지를 더 생각했어요.


'우리 반 한 아이에게 위로가 되는 동시를 보여주자.'


늘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제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어요. 친구들 앞에서 밝고 유쾌하게 보이려 노력하지만 그 뒤에 숨기고 싶은 자신의 비밀을 감추려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아이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죠. 그 아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들도 참 많아 보였고요. 저 또한 안진영의 동시집을 읽을 때 이런저런 문제들로 골치가 아팠는데, 이 동시를 읽고 뭔가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흔하디 흔한 잔소리가 아닌 동시로 말을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이 동시를 보여줬던 기억이 나요.

이 동시의 화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지니고 있어요. "문제가 없다고 안 할게"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거든요. 하지만 4연과 5연에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언젠가는', '어떻게든' 풀릴 거라는 말을 반복하죠. 그래서인지 중의적 표현인 "문제 없어"라는 마지막 연이 더 강한 울림을 주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니 그 문제는 결국 없어질 것이고, 결국은 풀릴 문제니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 시의 마지막 연 "문제 없어". 이 한 줄만 기억해도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저도, 그 아이도요.




<아침을 맞는 법>


발가락도 한번 까딱

손가락도 한번 까딱


팔도 한번 움찔

다리도 한번 움찔


하아, 하품하면서

기지개도 한번씩 쭉쭉


알람을 꺼 놓고도 나는

이불 속에서 한참을

꼼지락꼼지락


서두르지 않을래


날개를 충분히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비틀거릴 테니까


40쪽.



모든 것이 지치고 힘들 땐,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에 부칩니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 때 더 그런 것 같아요. 내 앞의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땐 생각이 더 많아지죠. 왜 유독 밤에 더 생각이 많아지는지..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알람 소리에 깨야하는 순간을 경험한 적 있다면 이 시가 마음에 탁-하고 와닿을 것 같아요.

이 동시 속에서 꼼지락 거리는 사람을 보면서 누굴 떠올리셨나요?  자신일 수도 있고, 혹은 나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일 수도 있겠죠. 전 처음엔 저희 아들을 떠올렸거든요. 아침마다 제 시간이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 녀석을 깨우기 위해 토닥여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죠. 결국엔 '지가 일어나야 할 마음이 생겨야 일어나는구나.'하고 포기하니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왔네요.

그런데 위 동시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날개를 충분히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비틀거릴 테니까"

날개를 충분히 말리지 않은 나비는 결국 제대로 날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3학년을 가르치면서 직접 보게 되었어요. 혹시, 나비의 한살이를 관찰하기 위한 '나비 한살이 키트' 아시나요? 처음 이 키트를 받아들고 당혹스러웠어요. 애벌레가 불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왠 걸요. 보다보니 작은 방충망 안에 자그마한 케일 화분과 두 마리의 애벌레가 꿈틀꿈틀 대며 잎을 먹는데 고것 참 귀엽더라고요. 아이들과 나비 이름을 짓고 이름도 불러주며 나비가 되는 모습을 함께 기다렸어요. 몸집이 커진 애벌레가 어느새 자리를 잡고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를 며칠. 주말을 지나고 와보니 번데기 하나가 껍질만 남겨져 있었어요. 케일 잎 아래에 나비 한 마리. 책 속에서 본 사진이 눈앞에 그려진 순간이었죠.

나비의 날개 한쪽이 구겨져있길래 우리들 모두 당연히 날개가 활짝 펴질 것이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나비의 구겨진 날개는 펴지지 않았어요. 날개를 잘 말리려면 따뜻한 햇빛이 필요한데, 교실 환경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날갯짓 한 번 제대로 하기 어려운 나비를 위해 꿀물을 가져와 먹이기도 했지만 결국 나비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죽어버렸어요.

아침에 가장 먼저 죽은 나비를 발견한 저는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저 멀리 날려줬다고 거짓말할까 고민했어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 후자를 선택했어요. 나비를 응원한 아이들의 마음이 다칠까 봐, 그리고 나비가 아이들 상상 속에서라도 훨훨 날기를 바란 선택이라고 지금도 믿고 싶어요.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힘든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면, 날개가 잘 마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요.



<궁금하다>


훌쩍훌쩍

울던 그 애가

버드나무 밑을 지날 때였다.


버드나무가

가지를 뻗어

그 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무슨 말인가를

속삭여 주는 것이었다.


버드나무를

올려보던 그 애는

이내 눈물을 닦고

사뿐사뿐

가던 길을 걸어갔다.


버드나무는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을까.


20쪽.



위로를 한다는 건 거창한 말과 행동이 아닌 상대에 대한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단순한 행위가 어떨 땐 굉장한 힘을 발휘하죠. 위 동시에서는 버드나무가 훌쩍이고 있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무슨 말을 속삭여 준다고 말해요. 마지막 연에 화자는 '버드나무는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해 주었을까.'를 궁금해하지만, 전 버드나무가 아이에게 한 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 아이에게 무슨 힘든 일이 있었는지, 어떤 슬픈 사연이 있는지가 더 궁금했거든요. 그러자 동시 속 아이가 꼭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어린 나에게 버드나무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상상을 하니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들리더라고요. "괜찮아.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간단다."라고 말이죠.   

안진영 시인은 동시를 쓰면서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어린아이가 치유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고백했어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이 무의식에서 나와 동시로 쓰인 경험에 대해,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들을 꺼내어 동시로 꺼낸 작업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그녀의 인터뷰를 통해 저도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인터뷰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오디오 동시마중. 산문의 맛. 안진영 편. https://www.podbbang.com/channels/8204/episodes/24887604)

'세상을 보는 렌즈를 바꿔 낀 것처럼 동시를 만나면서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게 다가왔다'는 시인의 말처럼 동시를 읽는 선생님에게도 이런 순간이 다가오길 기도합니다. 선생님 안에도 혹시 시인처럼 위로가 필요한 울고 있는 어린이가 있지는 않은가요? 혹시 아직도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안진영 시인의 《넌 바위 낼게 넌 기운 내》를 읽으며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함께 만나 위로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래요. 어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요.




<어떤 가위바위보>


난 가위 낼게

넌 힘을 내


난 바위 낼게

넌 기운 내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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