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교직 생활이 이렇게나 힘들어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를 바라보는 세상의 따가운 눈초리, 특히 교사를 향한 부정적 시선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는건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신규 교사였던 저에게 “우리 나중에 돈 좀 모으면 학교 때려치우고 작은 커피숍 차리자.”라고 말한 선배교사님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었는데... 그런 대화 속에서해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초임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분들은 지금쯤 작은 커피숍을 차리셨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학교에서 남아계실까요.
요즘 선생님들 사이에서 ‘교사의 학교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도 돕니다. 학교 현장은 어떨 땐 살얼음판 같거든요. 조금만 발을 잘못 내딛으면 바지직 다 부서져버릴 것 같은 그런 곳이요. 그래서일까요? 위 동시를 읽으면서 "근데/ 순한 사람이고 싶지 않더라/ 어떤 사람들 앞에서는."이라는 화자의 말이 더 이상 저한테는 순한 선생님으로 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어요. 위 동시를 쓴 임복순 시인도 초등교사거든요.
동시판에서 이름이 알려진 시인 중에는 초등교사인 분들이 꽤 있어요.《잠자리 시집보내기》의 류선열, 《콩, 너는 죽었다》의 김용택,《팝콘 교실》의 문현식등등... 아이들가까이에 늘 있어서인지 이 분들의 동시에서는 우리가 늘 봐온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임복순의 동시집 《김단오 씨, 날다》는 앞의 동시집들과는 다른 차별점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교사 화자를 동시의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꽤 많이 등장한다는점이죠.
<시 읽을 때>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 주면
그게 정말이에요? 묻는 아이가
꼭 있다.
그럼 또
시인이 거짓말할 리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꼭 있다.
19쪽.
시를 읽어주는 선생님 화자가 등장한 동시인데, 어떤가요? 아이들과 시 수업할 때가 혹시 떠오르시나요?
이 동시를 소개한 김에 시와 관련된 제 이야기도 하나 할까 해요. 실은 저도 학교의 상황이 견디기 힘들어 작년 말 교사를 그만두려 했거든요. ‘더 이상 나를 소진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아.’ 이런 좌절감으로 교실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 결심을 하고 난 다음 날부터 반 아이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세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늘 좋은 동화와 동시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은 우리의 마음을 늘 들어주고 알아주는 선생님이에요.”
솔직히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고자 선생님이 된 것 아니었는데.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눈물이 나던지요. 교사가 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교사로서, 혹은 아이들을 내세운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는 두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 주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게 좋았어요.
그러다 작년엔 조금 특별히 '아이들에게 좋은 동시를 선물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고요. 그래서 매주 월요일 동시 쓰기 활동을 했어요. 제 마음에 와닿은 동시들을 소개하고 함께 필사하고 단상을 쓰는, 아주 간단한 활동이었지만 매 순간 진심을 다했어요. 음, 아이들의 마음 밭에 숨겨진 동심의 씨앗을 찾아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동시를 담은 물을 졸졸 부어주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왜냐면 아이들이 저에게 건넨 말이 아이들 마음에 달린 다정함과 위로의 열매 같았거든요. 그때 확신했어요. '나만 동시를 통해 위로와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구나.' 하고요. 자신 주변에 어려운 친구들을 살펴보고, 힘들어하는 선생님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는 다정한 아이들을 동시를 통해 만날수 있었던 것은 동시가 준 또 다른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솜사탕 수박>
어느 반에서 씨앗 관찰하고 남아 았는지
선생님 드시라고 손바닥만 한 수박
딱 한쪽을 보내왔어.
선생님은 그걸 스물일곱 조각으로 나눠
아이들 입에 쏙 넣어주는데
진짜 딱
콩알만 했어.
근데 고게 또
솜사탕같이 달더라고
사르르 녹더라고.
40쪽.
임복순의 동시집 《김단오 씨, 날다》안에는 이 땅에 있는 선생님들을 위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동시들이실려 있어요. 좀 더 세련된 설명은 없을까,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문장은 없을까 고민했지만 ‘위로와 희망’이 두 단어 이상의 멋진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동시를 쓴 시인이 바로 우리와 같은 선생님이기도 하니 동시에서 하는 말들이 다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요.
<솜사탕 수박>에서 나오는 선생님의 모습이 임복순 시인만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많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지식만이 아닌 가치와 사랑과 같은 것들도 예쁘게 쪼개어 넣어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들도 단지 글로 쓰지 않을 뿐, 동시를 쓰고 있는 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동심을 찾고 발견하고 다듬고 꺼내보는 작업이 동시를 쓰는 태도 중 하나니까요.
어린 영혼을 보듬어주는 우리만의 작업은 보통의 사람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아요. 마치 《어린 왕자》에 서어린 왕자와 작별을 앞둔 여우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처럼요.
“내가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세상. 그 가운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늘 애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열심히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전 제가 믿고 바라는 것을 하기로했어요. 지금은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앞에 있는 아이들의 성장을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으로정했어요.동시와 함께요. 앞으로도동시는 계속 쓰여질 거고, 또 누군가로부터 읽혀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선생님도 저와 함께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