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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정 Apr 03. 2024

손바닥 위에서 동시랑 놀기

《손바닥 동시》유강희 2018 창비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34쪽




봄.봄.봄.입니다. 소개해드린 첫 동시의 제목도 <봄>이예요. 동시를 제대로 즐기려면 소리를 내서 따라 읽어봐야 한다니까, (시간과 마음이 허락한다면) 동시를 소리 내어 한 번 더 읽어볼까요?


<봄>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유강희 시인의 《손바닥 동시》실린, 단 한 글자 "뾰"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의 동시, 어떠세요? 찬찬히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새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봄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듯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동시를 상형동시라고 불러도 될까요?

 참, 3연에 "뾰뾰뾰" 와 "뾰뾰뾰뾰뾰" 사이에 놓여진 쉼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면,  선생님은 동시를 제대로 읽고 있는 거에요. 우리 반 아이들은 이 쉼표를 아직 싹이 트지 않은 씨앗으로 보더라고요. 전 지렁이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모습이라고 상상했답니다.  이 동시집에 실린, (예사롭지 않은) 쉼표가 들어간 또 다른 동시를 읽어볼까요?  




국수 가족


호로로호로록

후룩후루루룩

뾰록뾰로로뽁,


60쪽.



위 동시도 소리를 내어 읽으셨기를요! 이 동시는 특히나, 실감 나게 소리를 내며 읽어야 맛이 나는 동시거든요. 동시를 읽다 보면 호로록 면을 먹고, 후루룩 국물을 마시는 가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의 입으로 "뾰록뾰로로뽁"하며 국수 한 줄이 쏙-하고 들어가는 모습이 상상되는 재미있는 동시예요. 특히, 마지막 "뽁"뒤에 놓인 쉼표가 입가에  국물 자국처럼 보이지 않나요? 국수가 순식간에 입 속으로 들어갈 때의 속도감마져 느껴집니다.

 

위에 소개한 동시를 '손바닥 동시'라고 부른답니다. 동시집의 제목도 그래서《손바닥 동시》에요.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이 동시의 탄생 비화를 시인은 동시집의 맨 뒤에서 소개하고 있답니다. 유강희 시인이 10여 년 전 바닷가를 거닐다 메모장이 없어 손바닥에 시를 쓰게 되었대요. 우연찮게 시인의 손바닥에 쓰인 '손바닥 시'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편으로 쓰이게 되었고, 그 동시들이 모여 '손바닥 동시'로 발전하게 된 거죠. 손바닥 동시를 시인 혼자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요. (이미 옛날부터 짧은 시들은 이미 존재했답니다. 중국은 절구, 일본은 하이쿠, 우리나라는 시조, 이렇게요.) 손바닥 동시는 우리 옛시조에서 첫 구만 떼어내어 3.4/3.4/3.5의 기본 형식을 두고 짧은 시로 표현한 방식으로 쓰여요. 처음 읽었던 〈봄〉의 글자수를 세어보면 "아!" 하고 이해가 되실 거예요. (숫자가 딱 들어맞죠?)

단, 손바닥 동시를 쓸 때는 규칙이 있어요.

첫째, 기본 자수에서 2~3자를 넘어서는 안됨.

둘째, 글자수를 줄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

이 규칙을 알려주고 작년 우리 반 아이들과 손바닥 동시 대회를 열었죠. 아이들이 쓴 손바닥 동시를 몇 편 소개해볼게요.




<연필>


쓱쓱쓱쓱 싹싹싹

쓱쓱쓱쓱 쓱쓱

쓱싹쓱똑, 쓱싹싹쓱쓱


-김*윤 학생(5학년)


<치과>


사탕이다. 맛있네

또 있네, 맛있다

치과네, 꺄아아악


-박*희 학생(5학년)


<가을 공기>


나무의 나뭇잎을

포싹 겁줘서

바사삭 말렸다


-이*아 학생(5학년)



5학년 아이들이 쓴 손바닥 동시 어떤가요?  전 위 동시들이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사물, 귀로 들은 소리, 거기에 상상력까지 모두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동시가 갖고 있는 함축성이 제대로 표현된 동시, 감각적 표현이 살아 꿈틀대는 동시라고 감히 평가해 봅니다. 시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짧은 글만으로 장면이 눈앞에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이런 동시라면,  숏츠와 같은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요즘의 아이들을 동시로 데려와 충분히 놀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른도 마찬가지!)




<삼례장날>


개와 고양이가

다른 우리에 갇혀

서로 바라본다


17쪽.




<닭>


그 많던 알

다 어디로 갔을까

한 번도 품어 보지 못한


97쪽.



위의 두 편은 손바닥 동시가 마냥 가벼운 내용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요. 단 3줄만으로도 세상을 깊게 바라보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하죠.

<삼례장날>에서는 시골 장날의 흔한 풍경의 한 부분을 묘사하고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개와 고양이가 단순히 우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끝낼 수 없게 만들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 갇힌 동물의 시선을 통해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되죠. 물론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요.

<닭> 은 읽고 난 뒤 독자에게 꽤나 불편한 질문을 던져요. 이 동시를 읽은 아이들은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보며  '한 번도 품어 보지 못한' 닭장에 사육되는 어미 닭을 생각할거에요. 그리고 그 생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의문, 인간과 동물의 관계, 혹은 생명 존중과도 연관 지어 더 뻗어나갈 수 있을테고요.


자, 그럼 문제 나갑니다. 아래 동시의 제목을 맞춰보세요.




<첫눈>


너랑 있을 때

처음 맞는 눈,

그 밖엔 모두 흰 눈


56쪽.


<대나무>


죽죽 자란다

요만큼 자랐다,

눈금도 긋는다


114쪽.




 첫 번째 동시는 <첫눈>, 두 번째 동시는 <대나무>랍니다. 제목을 본 순간 탁- 하고 무릎을 치게 되지 않나요?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랑 우리나라의 손바닥 동시와의 큰 차별점은 '제목'에 있거든요.(절구나 하이쿠는 제목이 없다는 사실!)  짧은 글과 제목이 합을 이루는 순간, 손바닥 동시를 읽는 재미도 배가 되죠.

손바닥 동시집을 읽다 보면 내 손바닥 안에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맡고, 느낀 세상의 모든 것을 데려와 놀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도, 오래되어 빛바랜 추억도, 단 3줄, 손바닥과 펜만 있으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동시 놀이, 어떠세요?

이번 주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하니, 아래의 시처럼 선생님 귀에 들려주는 벚꽃의 시를 잘 듣고 손바닥 동시 한 편 써보는 건 어떨까 하고 제안해 봅니다. 아님, 동시집 한 권 챙겨서 따뜻한 봄날 보내는 것도 괜찮고요.




숲속에서


가만히 눈 감고

바람이 나무에게

들려주는 시, 들어 봐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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