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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로라 Mar 27. 2024

동시, 비유로 나는 법

《나는 법》김준현 2017 문학동네


<일>



번데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

짧은 다리를 잊어 가는 일


반창고 속에서 일어나는 일

짝꿍이 낸 상처를 잊어 가는 일

파란 멍이 보라색으로

보라색 멍이 희미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몰래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


22쪽.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새학기 정비에 분주했던 때를 지나 벌써 3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특히나 학교에서 3월은 더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듯 해요. 그래도 스물여덟이나 되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게 익숙해지고, 교실 앞판과 뒤판에도 게시물과 아이들의 작품들로 하나 둘 채워진 걸 보면 한 달의 시간 동안 교실 안에서 저나 아이들 사이 꽤 많은 일이 있었네요.

 <일>은 김준현의 《나는 법》이라는 동시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시입니다. 작년에 저에게 큰 위로를 준 동시이기도 하죠. 교사들은 학교에서 많은 일을 하잖아요.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부모와 상담하고, 학교 업무를 처리하고... 하루종일 쌓여있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쏙 빠져버린 상태로 퇴근하는 일상적인 일이요.

 또한 예측하지 못한 일들도 학교에선 일어나죠. (꺼내면 속상하니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을게요.) '그런 일'이 생기면 교사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처할 능력도 힘도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죠. 선생님은 혹시 여태껏 쌓아둔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 순간을 마주하신 적 있으신가요? 언제라도 나에게 벌어질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지는 않으세요?

 하지만 위 동시에선 "번데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짧은 다리를 잊어가는 일"이래요. "반창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처가 아무는 것이 아니라 "짝꿍이 낸 상처를 잊어 가는 일"이라고요. 화자는 파란 멍자국이 점점 히미 해져 사라지는 일 같은 "아무도 몰래/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죠.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 고통받았던 순간들, 괴로움에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들도 결국 다 기억 속에 잊힌다는 것을 멍에 비유한 이 시가, 선생님에겐 어떤 위로의 말로 들리나요?     

 위 동시를 쓴 김준현은 탁월한 언어 감각을 지닌, 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비유를  활용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호수처럼 맑은 너의 눈'은 직유, '너의 눈은 호수다'는 은유. 네, 맞아요.  비유법 말이에요. 그가 비유로 얼마나 동시를 잘 표현하는지 또 다른 동시로 확인해 봐요.




<물방울 연주>



전깃줄에 줄줄이 앉은 참새들을 봤어


참새, 참새, 참새, 참새, 참새, 나, 참새, 참새, 참새, 참새


나는 참새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다 날아가 버렸어



혼자 뚝 떨어졌지


참새들은 다 높은음자리인데

빈 오선지에서 나는 낮은음자리


발가락이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고

손가락이 뚱땅뚱땅

음악과 통할 때까지


웅덩이로 툭, 툭

창문만 한 하늘만 건드렸지


34-35쪽




 이 동시엔 '참새'와 '나'가 등장해요. '나'는 바로 물방울이죠. 어떤 장면이 그려지나요? 저는 비가 개인 뒤 전깃줄에 앉아 있는 참새들 사이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떠올렸어요.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참새처럼 날지 못하지만, 웅덩이에 비친 하늘을 툭, 툭 건드리며 전기와 음악이 자신에게 통할 그때를 꿈꾸죠. 전깃줄은 오선지 악보가, 참새와 물방울은 음표가, 그들의 움직임은 소리가 되는 시적 순간을 비유로 잡아낸 표현이  멋지지 않나요? 시인만의 비유를 통해 참새는 높은 음자리에서 저마다 원하는 소리를 내지만 반대로 물방울은 빈 오선지의 낮은 음자리로 새롭게 태어나죠.

 더 나아가 시인은 이 둘의 대비적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보여주기도 해요.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소리를 내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아주 낮은 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저의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뭐 어때요. 이게 동시의 매력인걸요. 선생님은 물방울 연주에서 무엇을 떠올리셨나요?

 



<인디언 아이처럼>


국어책에 있는 글자들을 다 주워 모아

흰 눈 위에 수북한 나뭇가지처럼 주워 모아

모닥불을 피우자


그러면 빈 국어책은 함박눈 내린 초원처럼 넓겠지

나는 페이지를 넘어 다니며

순록처럼 뛰어놀겠지


국어가 없는 사람처럼


그저 끝없이 달리며

소리를 지르는 평야의 인디언 아이처럼

별이 빛나는 밤에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사냥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드는 인디언 아이처럼


51쪽




 시인의 색다른 비유가 이제 눈에 좀 익으셨나요? 위 동시는 제목부터 <인디언 아이처럼>이네요.  비유로 글자들을 연결하면 국어책에 쓰인 글자들이 나뭇가지가 되고, 빈 국어책이 하얀 설원이 될 수 있어요. 작가가 비유를 통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나'는 설원을 뛰어노는 순록처럼, 국어가 없는 사람처럼, 인디언 아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죠. 도대체 김준현 시인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요?

 시인들에게 글은 곧 자신을 보여주는 수단이죠. 글 없이는 동시를 쓸 수 없으니까요. 전 1행의 "글자들"이 시인이 가진 시의 언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국어책"이 동시집이고, 수북이 쌓인 "글자들"은 시인이 동시들이겠지요. 이 동시를 쓸 때 시인은 글자 없이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할, 그럼에도 글자가 없는 세상 속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나 봐요. 시인은 왜 끝없이 달리며 소리를 지르고, 글자들을 모아 태운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는 인디언 아이의 모습을 자신에게 비유했을까요? 어쩌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일지 모르죠. 색색의 실들을 모아 어떻게 직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무늬의 천이 만들어지듯, 수많은 글자들을 모아 시적 순간표현해야 하는 동시 창작의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고 고통스럽거든요. 그래서인지 '국어가 없는 사람처럼'이라는 비유에서 동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시인의 모습이 살짝 보이는 듯했어요.

 음, 전 글자들을 모아 만든 모닥불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싶어요. 이 글을 읽는 선생님도요.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 곁에서 사냥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이처럼 동시 곁에서 시인의 목소리를 듣고 심심하면 하늘의 별도 보고, 꾸벅 졸기도 하며 그렇게 평화롭게 말이죠.

 이 동시집에 실린 건 아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선생님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이 시인의 동시가 있어요. 올해도 학교는 시끌벅적할 것이고 또 많은 일들 또한 벌어지겠지만, 동시는 늘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이 동시도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꿈꿔봅니다.



<네가 얼마나 온 힘을 다해 걷는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은 갯벌

잘못하면 나무처럼 발이 뿌리가 되는 갯벌

뻘뻘

진땀이 나는 갯벌    

 

꼬막, 망둥어, 달랑게, 고둥, 불가사리가 꿈적이는 갯벌

바다를 이불처럼 덮고 자는 갯벌     


기어 다니다가도 가끔 일어서서 한 걸음씩 걸으려고 하는 한 살 아기가

얼마나 애쓰는 건지 보여준다

세상이 우리의 발목을 어떻게 잡는지 보여 준다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마음을 보여 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깊은 건지

한 발을 떼고 나면 남은 그 구멍이 보여준다


동시마중제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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