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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로라 Mar 13. 2024

친근한 동시로 가까워지기

감자꽃. 권태응. 1994. 창비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다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 동시를 읽어본 적 있으세요? 위 동시는 권태응 시인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오늘 제가 소개할 동시집의 제목이기도 해요. 이 동시가 처음인 선생님은 동시를 읽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전 자주꽃-자주감자, 하얀꽃-하얀감자로 연결되는 대구의 형식의 짧은 동시라 아이들과 암송하기도 좋고 운율감도 살아있는 동시라 생각해요. 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 심은대로 거둔다.' 와 같은 속담이 담고 있는 진리를 감자꽃으로 재해석한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당장 작년 아이들과 이 동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물론, 학교 생활 열심히 해라. 뭐 이런 잔소리를 하기 위한 의도는 숨겼죠.(하하하) 그런데, 막상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니 아이들의 해석이 너무나 다양해서 깜짝 놀랐어요! 제 입장에선 이 시가 담고있는 주제가 선명하다고 판단했는데, 누가 읽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생각이 나올 수 있구나 한 깨달음을 그때 얻은거죠.

 위 시를 쓴 권태응 시인은 191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어요. 윤석중, 이원수와 동시대를 살며 문학을 통한 항일 운동에 힘쓰다 '독서회 사건'에 연류되어 1년간 감옥 생활을 했어요. 그때 얻은 폐결핵으로 그는 결국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년까지만해도 전 권태응 시인에 대해 전혀 몰랐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동시집을 제가 찾아 읽게 된 이유는 그의 특이한 작가 이력 때문이에요. 실제 그는 폐결핵을 앓은 1944년 초부터 시조와 소설을 쓰기 시작하다 이후 동시 쓰기에 몰두해서 작고하기 전까지 약 3년간 육필로 쓴 여섯권의 동시집을 손수 엮었대요. 평론글을 통해 권태응을 알기 전까지 저는 고작 한 두 편 정도 평론집에 실린 동시 보면서 '아, 이런 동시도 있었군.' 하며 동시를 관망하는 자세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분의 동시집 만큼은 찾아 읽어 보고 싶었어요.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픈대도 끝까지 동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슨 내용을 썼을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바로 학교도서관으로 쫓아갔더니! 다행히 아래에 보이는 한 권의 동시집이 절 기다리고 있었지요. (매우 말끔한 얼굴로요!)

 기존에 접했던 동시집들과는 다르게 크기도 좀 큰 편인대다 양장본으로 되어 있어서 그림책인 줄 알고 동시 코너에서 못찾고 한참을 헤매었던 기억이 나요. 이 책을 발견하자 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읽어내다 아래의 시에 제 눈길이 딱! 멈췄어요.




<코록코록 밤새도록>


참새는 참새 아기

제일 귀엽고,

참새는 참새 새끼

품에 안고,

코록코록 밤새도록

자고 지고.


암탉은 암탉 아기

제일 귀엽고,

암탉은 병아리들

품에 안고,

코록코록 밤새도록

자고 지고.


엄마는 얼뚱아기

제일 귀엽고,

엄마는 얼뚱아기

품에 안고,

코록코록 밤새도록

자고 지고.



 참새나 암탉이나 사람이나 엄마라면 자기 자식이 제일 귀엽다는 표현이 좋았어요.  자식을 보는 엄마는 저마다의 표현은 다를지 몰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품고 있지 않을까요? 전 마지막연을 읽으면서 '얼뚱아기'같은 아들을 시작으로 우리반 아이들이 주르륵 떠오르더라구요. '내 새끼 귀한만큼 너희들도 집에서 참 귀한 녀석들일거야. 암암..' 이러면서 말이죠.  '코록코록', '자고 지고'의 반복적 표현을 넣은 구조에 참새-암탉-엄마, 참새 새끼-병아리-얼뚱아기로 낱말을 바꿔가며 점차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성, 이런 방식은 선생님들이 어릴 적 접했던 동시랑 많이 닮지 않았나요? 시인은 낯선데 동시는 전혀 낯설지 않은, 그래서 더 많은 동시를 읽고 싶은 마음에 동네 도서관을 찾아갔어요. 바로 이 책을 읽어보려구요!

 



  1994년 창비아동문고 시리즈로 발행된 「감자꽃」동시집 표지랍니다. 처음엔 1948년 시인이 살아있을 적에 동요집 「감자꽃」으로 세상에 나왔대요. 이후 창비에서 재 발행해서 좀 더 편하게 동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총 42쇄를 찍는 동안 표지가 살짝 바뀌긴 했지만 송진헌 작가가 그린 그림이 시를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어서 꽤 마음에 들더라구요.



<벽장>


먹을 것이 있으면은

넣어 두는 벽장.


발돋움을 놓고는

열어 보는 벽장.


나가 놀고 들어오면

열어 보고 싶고,


버릇되어 번번이

열어 보고 싶고.



 보통 동시집 한 권에서 좋은 동시가 3편 있으면 꽤 괜찮은 동시집이라고 이야기한대요. 동시집 한 권에 실린 동시들이 보통 40~50편 정도 되는데 그 중 3편만 내 마음에 들어도 성공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저에게 「감자꽃」은 <벽장>과 같은 동시집이에요. 언제 어느 때나, 어느 장을 펴도 다 좋고 '번번이 열어 보고' 싶거든요. 동시를 찬찬히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보기도 하고(<춥긴 머 추워>, <고개 숙이고 오니까>),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어린이랑 도 해요.(<또랑물>, <풀밭에 놀 때는>) 어떨 땐 도토리, 앵두, 땡감나무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고추잠자리나 송아지의 마음도 헤아려보고(<땡감나무>, <고추잠자리>,  <앵두>) 해와 달과 별의 이야기까지도 들어볼 수 있는 순간도 생기더라구요. (<별님 동무 고기 동무>, <해님과 달님>)

 더 소개하고 싶은 동시들이 많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저의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동시 하나로 마무리할게요! 올해 신설교에 발령을 받아서 정말 '없는 살림'속에서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동시는 놓지 않으려는 제 다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신없는 3월, 여유를 찾기에는 너무나 바쁜 달이지만 아직 동시 읽기를 시도하지 못한 선생님이 계신다면, '우리 괴로움 속에서도 별 쳐다보기'의 다짐처럼 동시집 한 권 꺼내 읽기 해보세요. 이번주 나에게 내는 숙제는「감자꽃」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동시 3편 찾기! 어떠세요?




<없는 살림일수록>


뭣이든지 일을 하곤 밥 먹기.

많이 벌기보다는 아껴 쓰기.

언제나 식구들 몸을 튼튼히.


굶주려도 기를 쓰고 애들 공부.

괴로움 속에서도 별 쳐다보기.

언제나 식구들 뭉친 한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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