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왔다」.방주현. 2020. 문학동네.
3월이 시작되었어요. 새 교실에서 선생님과 잘 통하는 아이들을 만나셨나요? (제발 그러셨기를요!) 그럼,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 우리 교실에서 어떤 아이들을 만나고 싶을까?', '내가 정말 바라는 어린이는 어떤 모습일까?'
저는 이 질문의 답을「내가 왔다」라는 동시집에서 찾았는데, 아래 시를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자기소개>
살금살금 걷기
다다다다 뛰기
모두 자신 있습니다.
금지 구역 운동장도
용감하게 갈 수 있습니다.
일주일쯤 세수 안 하고
버티는 것도 문제없습니다.
취미는 주머니 탈출
특기는 비행입니다.
저는
태성이 ( )입니다
선생님들 괄호에 들어갈 말을 찾아내셨나요? 정답은 바로 ‘실내화’에요. 자기소개를 한 화자는 사람이 아닌 실내화라는 설정이 참 재미있는 시랍니다. 하지만 이 시의 묘미는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진짜 주인공을 상상하게 된다는 점에 있어요. 바로 실내화의 주인인 태성이 말이에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살금살금 걸어다니며 어떤 장난을 칠까 고민하고, 다다다다 뛰며 온 복도를 휘젓고 다니는 아이. 선생님이 가지 말라고 한 금지 구역인 운동장도 용감하게 갈 수 있는 태성이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어려운 학생일 수도 있겠네요. 혹시 이 시를 읽으면서 선생님이 만난 수많은 제자들 중 어떤 한 아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꽤 많은 아이들이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거든요.(하하하!) 하지만 참 묘한 기분도 같이 들었어요. 분명 교실에서 만나면 “복도에서는 사뿐사뿐 걷는거에요!”이렇게 알려 줬을텐데, 여기 등장하는 태성이가 밉기보단 태성이의 장난을 응원하며 지켜주고 싶은거에요. 선생님들은 이 동시를 읽으며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초능력 목발>
호찬이 형은
축구 골대를 발로 차서
깁스를 했다던데
발가락뼈에 금이 갔다는데
오늘 보니
복도에서 제일 빨리 달린다
운동장에선 목발로 공도 찬다
다리가 네 개 된 뒤로
더 잘하는 것 같다
저 목발
갖고 싶다
깁스한 호찬이 형의 목발을 너무 갖고 싶어하는 이 시의 화자도 왠지 태성일 것 같지 않나요? 어른들이 생각하기엔 불편한 목발이 태성이에게는 자신을 운동왕으로 만들어 줄 멋진 아이템이 되어버렸네요. 사람들은(어른들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본 것을 믿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 이 마음이 전 너무 부러웠어요. 한편으론 태성이의 소원을 들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터질까하는 상상도 하게 되구요.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화자의 편에 서기보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동시를 읽게 되는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동시들을 읽으면서 어린이 화자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면 선생님은 이미 훌륭한 관찰자의 눈을 갖고 계시는거에요. (시인의 능력 중 하나가 뛰어난 관찰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이 동시집에서는 다 태성이 같은 어린이만 등장할까요?
<전학>
애벌레가 나비 되어 날아간 다음 날
연우는 전학을 갔다
사물함 한 칸 남고
연우 책상은 선생님 보조 책상이 되었고
발표자 뽑기에선 연우 이름이 사라졌다
검사 도장 찍힌 문제지는
받을 사람이 없어 폐휴지함으로 갔다
연우가 전학 가던 날
집에서 울었다던 주원이는
요즘 쉬는 시간 마다 유빈이랑 뛰어다닌다
다들
웃고 떠들고 깔깔대는 하루하루
이제 연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연우 생각은 나만 한다
나는 다음 달에 전학 간다
이 동시에서 ‘나’는 전학 간 연우가 교실에서 점차 잊혀갈 때에도 연우와 연결된 추억들을 떠올려요. ‘연우 생각은 나만 한다’라는 문장은 결국 전학 가고 난 뒤 친구들 사이에서 잊힐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 동시를 읽으면서 아이들 또한 어른 못지않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요.
혹시 이 시에서 숨겨진 또 다른 시선을 발견하셨나요? 이 동시집을 쓴 시인이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오랫동안 학급문집을 만들면서 동시를 쓰게 된 시인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전학 간 아이의 빈자리까지 오래오래 바라봐주는 시선을 지닌 그런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 반짝이는 모든 순간을 동시로 쓸 수 있구나.’ 하고 내심 부럽기도 했고요.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자면, 저를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도 이 동시를 쓴 시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선생님들에게 이 동시집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아이의 모습은 어른의 명령에만 따라 움직이고 친구 관계도 철저히 관리당하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혹은 원하는 대로 커가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거든요. 저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하는 어린이, 자신과 주변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풍부한 어린이를 만나고 싶거든요. 그리고 전 그 어린이를 이 동시집에서 만났어요!
<훈이>
훈이가
슬러시 껴안고
자전거를 끌며
천천히 걸어간다
가다 멈춰
슬러시 한 모금 먹고
조심조심 자전거 페달에 오른발을 올린다
잠깐 기우뚱했지만
이내 왼발로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간다
영어 학원 가방 멘 훈이가
오른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는 슬러시를 껴안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보는 어른마다
걱정스럽게 쳐다보지만
훈이 자전거는 계속
앞으로 간다
가끔 흔들리면서
저에게도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꽤 오래전부터 어린이문학을 다루는 작가들 혹은 평론가들 사이에선 ‘동심천사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어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어린이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내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인, 실제로는 그리 순수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강요할 수 있대요. 순수한 동심만으로 가득찬 교실을 상상해보면 선생님들이 생각해도 지금의 교실 상황과 너무 다르지 않나요? 그래서 전「내가 왔다」 동시집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지금의 아이들과 더 닮아있기에 이 동시집이 읽어도 읽어도 또 좋은가봐요. ‘가끔 흔들리’지만 그래도 ‘계속 앞으로’ 가는 훈이의 모습, 멋있지 않나요? 자신이 해야할 일(영어 학원)도 잊지 않고 먹고 싶은 것(슬러시)도 먹으면서 흔들흔들 자전거를 타는 훈이의 모습은 어쩌면 요즘을 살아가는 어린이의 이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구요.
전 동심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심이 있다고 믿어요. 동심은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에게도 지켜져야 할 마음이잖아요. 만약 나에게 소중한 한 사람을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동심의 한 형태라면 아래의 시 <학부모 공개 수업>에서도 내가 품은 동심 한 조각 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소개한 시 말고도 좋은 동시가 가득 담겨있는 방주현의 동시집 「내가 왔다」에서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어린이, 그리고 알고 싶은 동심을 찾아보시길 바라요. (학부모 공개 수업 준비도 파이팅!!)
<학부모 공개 수업>
장미 다발을 들고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던 판티마이 아줌마
수학 문제를 설명하던 6학년 2반 이서연 선생님
서류 가방 들고 걸어가던 김유성 아저씨
마을버스를 운전하던 박미양 기사님
모두들 일하다 잠시 멈춰 서서
먼 데 하늘을 보는
11시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