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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로라 May 01. 2024

작고 외로운 존재를 향한 동시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송선미 시. 문학동네. 2016



<외롭다 말하기>


외롭다 말하니

아빠 얼굴이 쓸쓸해집니다.


외롭다 말하니

뭐 맛난 거 해줄까,

엄마가 서둘러 바빠집니다.


외롭다 말하니

미오가 하품을 하며 먼 데를 봅니다.


외롭다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래도 외롭다 말하니

외로운 내가 앉아 나와 놉니다.

 

64쪽.



 선생님은 언제 외로움이란 감정을 처음 느끼셨나요? 전 외로움 보단 무서움에 먼저 반응하던 아이였거든요.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사춘기가 막 시작할 때 외로움이란 감정을 제대로 느낀 것 같아요. 가족도 친구도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감정들 말이죠. 위 동시에도 외로움을 느끼는 한 아이가 등장해요. 하지만 "외롭다"는 아이의 솔직한 고백을  엄마, 아빠, 심지어 반려동물인 고양이 미오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않네요. 외로움은 어른에게만 허락된 감정이 아닐터인데, 어른들은 왜 아이의 '외로움'을 인정하기가 어렵기만 한 걸까요?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어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출처. 네이버 사전

 아이가 홀로 있는 모습은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안타까운 장면이겠죠. 늘 즐겁게 웃으며 친구들과 뛰어노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원하니까요. 그래서 외로움이란 감정은 아이들이 느껴서도 안되고, 어른들이 주어서도 안 되는 감정이라는 인식이 생겼나 봐요. 

시 속 화자는 "외롭다/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라며 반문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죠. 대신 "외로운 내가 앉아 나와" 놀뿐. 결국 외로움이란 감정은 철저히 자신이 혼자일 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럼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외로움을 아래의 시에서 한번 찾아볼까요?




<운동장에서>


우리가 앉아 있는

넓은

운동장


운동장보다

큰 하늘

보다 더

우주


우주에서

여길

내려다본다면

우린 먼지보다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거야,


하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


친구는 일어나 혼자서 가 버렸다.


40쪽.




 동시에 등장하는 아이는 운동장에 앉아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아이는"이/ 넓은/ 운동장// 운동장보다/ 더/ 큰 하늘/ 보다 더/ 큰/ 우주"를 볼 수 있죠. 화자의 말처럼 우주에서 본 우리들은 진짜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겠죠. 아니 어쩌면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일지도요. 아이는 자신이 먼지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인식한 그 순간, 울음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울음을 이해하지 못한 "친구는 일어나 혼자서 가 버"리고 말죠. 그래서인지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외로움이 더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의 크기와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외로움의 크기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죠.




<엄마 이야기>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첫 번째 꼬마는 엄마가 있어

엄마가 안 보여도 엄마랑 있지


두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없어

이젠 볼 수 없는 엄마가 그립곤 하지


세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없어

엄마가 없어서 엄마가 뭔지 잘 몰라


네 번째 꼬마에겐 엄마가 있어

엄마가 있는데 고아처럼 살아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하지만 모두 엄마가 있는 건 아니야


24쪽.




 위의 동시들이 실린 동시집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을 쓴 송선미 시인은 책머리에 이런 글을 남겼어요. "잔뜩 겁먹고 방 안에만 웅크리고 있던 제가, 신을 꺼내어 신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설 때까지 그 한참을, 동시는 곁에 서서, 때로는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 주었습니다."라고요. 시인 혼자 온전히 감내해야 했던 모든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시로 세상에 꺼낼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인지 <엄마 이야기>와 같은 동시들이 그냥 읽히지 않나 봐요.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 하지만 모두 엄마가 있는 건 아니야"라는 담담한 화자의 마지막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처럼요. 이 동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든 "세상에 난 것들은 모두 엄마가 있어"라는 말을 붙잡고 살아갈 힘을 얻을 것만 같아요. 외로움은 결국 자신의 몫이고,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선 우선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요즘 세상은 사람들을 참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 역시 교사가 된 후에도 좀 더 사회에서 인정받고 경제적 여유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들을 진심 부러워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질수록 나의 처지가 더 싫어지더라구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삶의 목적을 성공이 아닌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으로 바꾸었거든요. 이런 생각들은 동시를 만나면서 더욱 선명해졌고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책을 쓰고 글을 쓰면서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을 자신도 생겼어요.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언제든 동시를 꺼내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도 외로움을 잘 견디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제는 표현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시인이 동시에게 쓴 아래의 편지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아도", "어딜 가지 않아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동시는 선생님 곁에 있을 거예요. 어쩌면 동시가 이런 말을 해줄지도 몰라요. '당신은 당신 자체로 소중하다'라고 말이죠.




<먼지가 되겠다

           -동시에게>


당신을 만나서

선생님이나 변호사, 검사나 약사, 의사나 화가

엄마나 아빠, 또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먼지가 되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아주 오랜 꿈은 먼지가 되는 것

아무도 모르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폴폴

어딜 가야 한다는

무엇 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이리저리 떠나니다가

빗자루에 휙 쓸려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지기도 하는

또는 운 좋게 어느 집 방구석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십 년이고

가만히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나는 먼지가 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어요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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