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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가 보여준 새해

이원수 동시전집 너를 부른다 이원수 창비 1979

by 김볕

찬란한 해


은가루, 나뭇가지에 날고

금가루, 해에서 쏘아 오는 아침.


눈부신 햇살에 맞아

새들은 날뛰고,

가지엔 새 움들의 기지개.

눈 덮인 흙 속에선 씨앗들의 꿈.


나도 묵은해를 벗고

비늘같이 번쩍이는

새해를 입는다.


새해 설날은 해의 나라.

찬란한 해야,

너는

먹구름, 거센 빗속에서도,


칠흑 같은 그믐밤에도

환히 빛나는 꿋꿋한 의지

커다란 사랑이었다.


오늘 나는 너를 닮아

가슴에 사랑하는 너를 안는다.


55쪽. <1968년>




2025년 1월 1일, 어느 때보다 조용한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전국 각지 일출 명소에서 행해졌던 일출 행사도 대부분 취소되었고, 제야의 타종 행사도 최대한 간소화되어 타종식만 진행되었습니다. 어둡기만 한 상황에서 새해의 복을 빈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새해의 희망보다는 현실 속 절망과 분노를 토해내고 있을 테니까요.

이원수 시 <찬란한 해>를 읽으니 친구가 오늘 찍었다고 보내준 일출 사진이 떠오릅니다. "금가루, 해에서 쏘아 오는 아침"이라는 동시 속 표현처럼 어느 해보다 붉고 선명한 일출. 마치 사진 속 해가 동시를 통해 "먹구름, 거센 빗속에서도,// 칠흑 같이 그믐밤에도/ 환히 빛나는" 나처럼, 힘들고 어렵게 시작한 새해지만 "꿋꿋한 의지"와 "커다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또 새로운 다짐을 세워야겠지요.




불에 대하여


추운 날 언 몸을 녹여 주는

어둠 속에서 찬란한 것을 보여 주는

새 것을 만들어 주고

더로운 것을 없애 주는

불아.


마른 잔디에 밀물같이 행진하는 너,

앞장서서 외치는 횃불인 너,

구들장 밑에 남모르게 지그시 누워 있는 너,

이글이글, 땅속에 용암으로 녹아 있는 너,

두둥실 하늘 높이 해가 되어 떠다니는 너,


빨간 장미밭에 춤추는 나비처럼

우리는 불속을 헤엄쳐 다니며 산다.

너를 마셔 내 가슴속에도 불,

때로는 너무 뜨거워

눈물로 달래기도 한단다.


39쪽. <1971>




화자는 "추운 날 언 몸을 녹여주는/ 어둠 속에서 찬란한 것을 보여 주는/ 새 것을 만들어 주고/ 더러운 것을 없애 주는/ 불"을 찾습니다. 불은 앞장서 행진하며 횃불이 되기도 하지만 구들장 밑에 누워 있기도 하고 땅 속 깊은 곳에 용암으로 녹이 있기도 하죠. 그런 불은 해가 되어 하늘 높이 두둥실 떠다니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속을 헤엄쳐 다니며 산다"는 표현이 각자가 품고 있는 열정을 형상화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새해의 다짐을 이렇게 세웠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만의 불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기.

분명 어두운 날은 지나가고 밝은 날이 다시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올해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시선을 갖고 마주한 현실을 올바로 보여주는 교사이자 시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또한 아이는 맘껏 뛰어놀고, 젊은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쏟아내고, 부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웃음소리와 그 아이가 커서 낳은 손주의 재롱에 벅찬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상의 회복을 꿈꿔봅니다. 모두에게 봄이 다시 찾아오기를. 일상이 회복되기를. 2024년을 힘겹게 버티고 2025년을 맞이한 "순희"와 함께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봅니다.



너를 부른다


나뭇잎이 손짓하며

너를 부른다.

운동장 느티나무

가지마다 푸른 잎새

바람에 한들한들

너를 부른다.


꽃이파리 꽃잎마다

너를 부른다.

울타리엔 찔레꽃

향기마저 피우며

바람에 하늘하늘

너를 부른다.


순희야

순희야.


양담배 양사탕

상자에 담아 들고

학교에 안 나오고

한길로만 도느냐.

우리도 목메며

너를 부른다.


87쪽.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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