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를 읽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어요. 특히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요. 동시란 이미 어른이 된 시인이 어린이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곤 하잖아요. 올해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삼각뿔 속의 잠》이 저에겐 그런 동시집이었어요.
"나는 밤이 두려웠습니다. 나의 밤은 유난히 길고 캄캄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동시를 만났습니다.(중략) 빛이 깃든 시를 쓰고 싶습니다"라는 시인의 말. 참 좋았습니다. 저 역시 어두운 곳을 비춰줄 수 있는 말의 별빛으로 가득 채워진 이 동시의 집을 만난 것이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간직하고 싶은 말들을 찾을 수 있었거든요."(4쪽.)
위 동시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합니다.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며 나를 알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알아가야 할까요. 어른이 된다면 알 수 있을까요. 사춘기는 자아를 찾는 시기라고 하잖아요.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은 그런 나이, 우리 모두 그런 때가 있었잖아요. 하지만 나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동시는 때론 나를 찾아가는 길을 보여줘요. 어린 시절의 나를, 아직도 찾지 못한 나를, 미래의 나를 말이죠.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 나의 퍼즐을 찾다 보면 나를 완성할 수 있을까요.
우물 안
꼭대기에서는
절대 볼 수 없어
길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 속에 있는 상처
그걸 꼭 봐야겠다면
사다리를 우물 안으로 내리고
바닥까지 내려와 봐
이 안은 아주 미끄러워
내려오다 다치지 않게
천천히
오래 머물면서
차츰 선명해지는 나를 봐줘
날 만나러
우물 안까지 와
오래 머물러 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이야기
56쪽.
'나'를 만나려면 "꼭대기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깊은 우물로 가야 한대요. 그 속에 있는 상처 입은 '나'가 있거든요. 그곳은 아주 깊고 또 미끄럽죠. "사다리를 우물 안으로 내리고/ 바닥까지 내려와"야 볼 수 있는 나. 정말 그렇네요. "천천히// 오래 머물"다보면 "차츰 선명해"지는 나를 보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죠.
깊은 좌절과 실패의 순간, 우린 때론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갑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살 수 있을까요. 깊고 오래된 마음의 상처는 점점 더 깊은 우울로 나를 끌고 가는걸요. 어른이 되어서도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이 우물 속에 울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외침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 <우물 안>이라는 동시가 캄캄한 우물 속을 밝혀주곤 '나'에게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합니다.
예민한 아이
내 눈은 고성능 카메라야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아
내 귀는 고성능 음성 증폭기야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
내 신경은 고성능 안테나라서
사람들 기분을 살피느라 늘 곤두서 있어
고성능 기계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
금세 방전되고
가끔 아무 버튼도 안 먹힌다니까
초록 불빛이 깜빡깜빡
방전되기 직전이야
충전하려고 콘센트를 찾고 있어
구석구석 다니다가
결국, 못 찾으면
완전 방전
미안, 나 먼저 갈게
집에 가서 충전해야겠어
난 예민한 아이니까
26쪽.
우물 속에서 예민한 어린 나를 만났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죠. 부모님의 잦은 다툼에 많이 힘들었대요. 엄마 아빠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가족의 기분을 살피느라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면서.
착하다는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참 많이 들은 성숙한 아이.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구. 어린 남동생을 살뜰히 살피는 누나. 뭐든 열심히 하던 모범생. 하지만 밤만 되면 두려움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겁 많고 소심한 아이. 나까지 엄마를 힘들게 하면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 때문에 많이 힘들었대요. 그렇게 착한 척, 괜찮은 척하느라 힘들었던 어린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느덧 선생님이 되었고, 반 아이들의 미세한 표정과 작은 소리를 잘 듣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처가 많은 아이일수록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여요. 아이가 감당하고 있을 아픔을 더 잘 감각할 수 있기에 때로는 저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성능 기계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 금세 방전되고/ 가끔 아무 버튼도 안 먹힌다니까"라는 화자의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됩니다. 때론 내가 나를 제일 아끼지 못하니까요. 남들 눈치 보느라 혹은 주변을 살피느라 분주한 이가 만약 이 동시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마지막 연 "미안, 나 먼저 갈게/ 집에 가서 충전해야겠어/ 난 예민한 아이니까"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화자의 모습이었어요. 내가 하지 못한, 그러나 너무 하고 싶었던 어린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거든요. 자신의 상태에 가장 먼저 예민하게 반응하고 살피는 마음,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어린 나는 못했지만 어른이 된 나는 달라져야겠죠.
"처음 시작한 점만 잘 기억하면" "별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동시집. "빤듯빤듯해도 좋고/ 빼뚤빼뚤해도 좋"은 나만의 별, 나의 밤을 지켜줄 별을 하나하나 그리다 보면 내 세상도 반짝이겠죠. 마치 아름다운 밤하늘처럼요. 어린 나도, 어른이 된 나도, 세상 어린이 모두가 저마다의 별 하나를 완성하는 것. 그게 진짜 나를 만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