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월 10일 스물일곱 살 권정생은 자신의 동시집을 손수 엮었습니다. 1963년 교회학교 교사로 임명된 지 일 년 남짓 지난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의 성경 구절을 마지막 페이지에 쓰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넉넉지 않은 형편과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 "혼자 써 놓은 글을 발표할 지면은커녕 보여 줄 사람도 없었"다는 안도현 시인의 해설처럼 그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열다섯 전후의/어릴 적/ 억이랑 주야랑/ 내 이웃들// 재미있게 여기다/ 적었습니다.// 열다섯 전후의/ 어릴 적// 그때의 생각은/ 어땠을까?// 슬픈 일 기쁜 일/ 많았습니다."라는 머리말을 여러 번 읽어보며 그 시절 그가 품은 소망이 무엇이었을까 가늠해 볼 뿐입니다.
조각달
까아만 고양이처럼
도사린 뒤곁에
장주발 깨뜨리고
꾸중 들은 누나
담벼락 붙잡고
쨀곰쨀곰
우는데
헤죽헤죽 웃는
별들 사이로
삐쭉 내민
조각달.
28쪽.
어린 권정생에게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누나, 형들이 있었습니다. 동시삼베치마에서는 가족 중누나의 이야기가 특별히 눈에 띕니다.2부<꽃가마>에 누나와의 추억을 기억하는 동시를 모아두어서 인듯 합니다. 그래서인지유독 어린 그를 알뜰히 살피던 누나의 모습, 그런 누나가 시집을 가버린 뒤 혼자 남겨진 외로움과 섭섭함 같은 감정이 많이 보여집니다.
그런데 <조각달>에 등장하는 화자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누나를 바라봅니다. 성인이 된 그는 어린 시절의 누나 또한 여린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요. "장주발을 깨뜨리고/ 꾸중 들은 누나// 담벼락 붙잡고/ 쨀꼼쨀꼼/ 우는" 모습조차그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나 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지금의 나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조금만 떨어져 보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헤죽헤죽 웃는/ 별들 사이로/ 삐쭉 내민/ 조각달."이 비춰주는 누나를 통해 알려주는 듯합니다.
강냉이
집 모퉁이 토담 밑에
한 페기 두 페기 세 페기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한 치 크면 거름 주고
두 치 크면 오줌 주고
인진 내 키만춤 컸다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열하고 한 밤 자고 나서
우린 봇따리 싸둘업고
창창 길 떠나 피난 갔다
모퉁이 강낭은 저꺼짐 두고
"어여―"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내 혼차
모퉁이 저꺼짐 두고 왔빈
강낭 생각 했다
'인지쯤
샘이 나고 알이 밸 낀데……'
15쪽.
이 시절 그의 동시쓰기는 언제 죽을지 모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찬란히 빛나던 기억 속 유년 시절을 지켜내기 위한 작업이었겠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 동시들을 묶어놓은 이 작품은 고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품정리위원회에서 유품 목록을 정리하던 중 발견되었거든요. 이미 수많은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고, 여러 문학인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된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왜 이 단 한 권의 동시집을 내보이지 않고 품고만 있었을까요.
<강냉이>에서는 어매(엄마)와 생야(형)과 함께 '강낭'을 심는 어린 정생이 등장합니다. 강낭은 강냉이의 안동 사투리로 옥수수 열매를 뜻한다고 해요. 거름 주고 오줌도 주며 정성껏 돌보며 자신의 키만큼 큰 옥수수를 두고 피난길을 떠난 가족, 부모님이 떠난 고향을 떠올릴 때 어린 정생은 모퉁이에 두고 온 옥수수를 떠올립니다. 샘(수염)도 나고 알이 배고 있을 옥수수를 말이죠. 그는 왜 이처럼 강낭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요.
소중한 어떤 것, 지키지 못한 것, 품을 수 없는 꿈같은 것을 작가는 '강냉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요. 위 시는 그가 끝내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훗날 가족이 애지중지 키운 닭을 잡아먹고 전쟁을 떠나는 <빼떼기> 이야기를 탄생시킨 이유이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런 그의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강아지똥>, <몽실언니>와 같은 작품들이 탄생된 것이겠지요. 결핍이 빚어낸 소망을 담은 동시들이 훗날 멋진 작품의 씨앗이 되었기에 더욱 소중한 동시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물
골몰길에 우물이
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
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
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
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못 보게
돌이도 못 보게
우물은 밤새도록
물만 만든다.
44쪽.
저는 권정생 작가를 정말 존경합니다. 별로 놀랄 것 없는 고백이긴 합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또 그를 기억해 주며, 저는 그중 한 명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권정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에 더욱 그의 작품을 알리는데 힘쓰고 싶어요.
위의 동시를 읽으면서 작가 권정생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안동 조탑동에 위치한 흙집에서 예배당의 종지기로 살며 죽기 전까지 책을 쓰고 읽었을 그. 오줌줄을 차고 다니느라 먼 곳을 이동하기 힘든 그.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금세 몸에 열이 달아올라 몇 달을 누워 지내며 끙끙댔을 그.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던
그가 있었기에 힘들었던 시기를 보내던 어린 저도 어렴품하게나마 소망을 품을 수 있었거든요.
단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세상이 봐주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작가 권정생. 그는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밤새도록 물만 만드는 우물처럼 글을 쓰고 또 쓸 수 있었던 건, 그도 모르는 사이 마음 깊이 자리 잡힌 소명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요.
내년 꽃이 피는 날, 안동을 가 볼 생각입니다. 자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삶을 살아온 교회 종지기. 그의 작품을 통해 나온 모든 인세를 세상의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고 했던 실천가. 삶이 곧 작품이고, 작품이 곧 삶인 그의 흔적을 보게 된다면 저도 조금은 그를 닮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찬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으면 따뜻한 봄날, "날마다 아침마다/ 접시꽃이 쏙!/ 따리아가 쏙!/ 담장이 안에서/ 몰래몰래" 자란 모습을 제 눈으로 볼 그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