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전 시를 잘 모르거든요. 시집을 제대로 사서 읽은 적도 없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힘듭니다.
그럼, 동시는요? 혹시 마음에 둔 시인은요?
전 동시를 매우 좋아해요. 동시집도 꽤 많이 샀고 아직도 사지 못한 동시집이 많아요. 누군가 물어본다면 좋아하는 시인의 이름도 줄줄이 말할 수 있어요.
우리 반 아이들도 동시를 좋아해요. 도서관에서 동시집을 찾아 읽는 아이들도 생겼고, 집에 가서 동시를 써서 저한테 보여주기도 해요. 어떨 땐 자기가 읽고 마음에 든 동시를 보여주기도 할 정도니까요.
아이들은 왜 저처럼 동시를 좋아할까요? 저랑 동시를 같이 읽어서일까요? 그럼 수학도 좋아해야 하고, 과학도 좋아해야 하고, 제가 가르치는 모든 건 다 좋아해야 하잖아요. 아무래도 그건 답이 아닌 것 같아요.
작은 호수
내 안에는 언제부터인가
작은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가끔 구름이 지나가다가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갑니다
더러는 새들이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저희들끼리 깔깔대기도 합니다
밤이면 별들도 찾아와 작은 호수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나직나직 말을 겁니다
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주
내 안의 작은 호수에다 나를 비추어 봅니다
내 안에는 언제부터인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102쪽.
"위의 <작은 호수>는 동시일까요, 시일까요?"
동시집에 실려있으니 동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린이가 이해하기엔 어려운 내용 같으니 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죠.
혹시 이 글의 첫 시에 답이 있는데 찾으셨나요? 맞아요. "시는 동시여야 한다/ 동시가 아닌 시는 시가 아니다". 윤동재 시인의 <서시>의 처음의 문장에 따르면 위의 작품은 시도되고 동시도 된답니다.
이 시를 읽고 "작은 호수"가 동심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구나 저마다 "작은 호수"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 작은 호수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말라버려하늘에 떠있는 구름, 자유롭게 나르는 새들, 밤에 반짝이는 별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시 속에서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도 끝까지 동시를 쓰면서 자신의 작은 호수를 지켜나가는 시인을 보았어요. 그러자 나에게도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작은 호수"를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나를 놓지 않고 끝까지 바라봐줄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아이들이 품고 있는 "작은 호수"도 지켜주어야겠다는 다짐도요.
씨앗 두 알
우리 할아버지
밭에서 씨앗을 심을 때 보면
한 구멍에다 꼭 두 알씩 심지요
한 알만 심지 않고
왜 두 알씩 심어요?
물어보면
두 알씩 심으면
서로서로 잘 자라려고 애쓰느라
둘 다 쑥쑥 자란다지요
두 알씩 심으면
서로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느라
둘 다 무럭무럭 큰다지요
14쪽.
화자의 할아버지는 "한 구멍에도 꼭 두 알씩" 씨앗을 심는다고 해요. 전 두 개의 씨앗을 시와 동시라고 생각해 보았어요. "서로 서로잘 자라려고 애쓰느라/ 둘 다 쑥쑥 자"라고, "서로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느라/둘 다무럭무럭" 자라는 씨앗 두 알의 모습처럼, 시도, 동시도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많이 나오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고 위로 받을테니까요.
저도 아이들과 더 많은, 더 좋은 동시를 읽고 싶어요.
시를 쓰는 시인님, 그리고 동시를 쓰는 시인님, 시와 동시를 둘다 쓰는 시인님,
슬픔에 공감하고, 아픔에 위로해 주는 그런 시를, 그런 동시를 써주세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읽을 수 있는 그런 시를, 그런 동시를 써주세요.
나날이 나아질 거라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너도 활짝 필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