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스 린드그랜의 동화《어스름 나라에서》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걷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은 날, 아이에게 백합 줄기 아저씨가 찾아옵니다. 푸르스름한 하늘빛이 내려앉은 어스름 녘에요. 백합 줄기 아저씨는 아픔을 지닌 아이를 찾아 어스름 나라로 데려가는 일을 하거든요. 아저씨와 함께 어스름 나라로 가는 순간부터 아이는 현실에서 꿈조차 꾸지 못한 것들을 해냅니다. 하늘을 날기, 전차와 버스 몰기, 여자 아이와 신나게 춤추기와 같은 일들을요. 실패와 좌절이 없는 곳. 백합 줄기 아저씨는 아이가 주저할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위의 동시도 백합 줄기 아저씨와 어딘가 닮은 듯한 푸른 개구리가 등장합니다. "푸르스름/ 저녁 어스름" 길을 걸던 화자가 만난 개구리. "폴짝,/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주 잠깐"의 순간이지만 화자는 좋았다고 말합니다. 꿈같기도 실제 같기도 한 찰나의 순간,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를 나누면서 개구리와 화자는 각자 무슨 꿈을 나누었을까요? 팍팍한 현실에 지쳐 있던 '나'를 알아봐 주는 단 하나의 존재. 그리고 눈여겨 봐주지 않을 조그만 개구리를 알아봐 주는 '나'. 서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지는 해
친구랑 싸워 진 날 저녁
지는 해를 보았네.
나는 분한데
붉게
지는 해는 아름다웠네.
지는 해는 왜
아름답냐?
지는 해 앞에 멈춰 서서
나는 생각했네.
지는 것에 대해서.
82쪽
해가 뜨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상이 시작됩니다. 부산한 아침 준비를 끝내고 학교로 출근을 하면, 수업을 하고, 급식을 먹고, 교실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공문을 처리하고, 학부모 상담과 회의 참석도 있습니다. 반복된 일상을 살다보면 무기력함과 권태로움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도대체 넌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데?" 또는 "내가 이렇게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와 같은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때론 뚜렷한 상대가 없음에도 혼자 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마주한 분홍빛으로 물든 저녁노을을 보며 혼잣말을 하게 되죠.
"아니, 왜 하늘은 이쁘고 난리인 거야."
지는 해는 왜 이리 아름다운 것일까요. 동시에서도 똑같이 묻습니다. "지는 해는 왜 아름답냐?"라고 말이죠. 시인은 동음이의어인 "지다"를 사용해 하늘에서 '지는 해'와 싸움에서 '지는 나'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져주는 것, 포기하는 것, 양보하는 것이 손해는 아니라는 것. 결국 모든 것은 지기 마련이고, 그 모습마저도 아름답다는 것을 시인은 알려주고 싶은 것일까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요즘 자주 말하는 것이 있어요. "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 줄 서기 할 때 앞자리를 양보하는 것, 먼저 발표를 하고 싶어도 다른 친구에게 기회를 주는 것, 친구가 사과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하기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곤 생각하죠. '나도 작은 것을 얻기 위해 더 큰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하루살이
어느 날 하루살이들은 생각했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루뿐이라면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겠어.
말하는 시간도 아껴야겠어.'
그래서 하루사이들은
밥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무얼 할까 고민도 더는 하지 않고
대신 아름다운 하늘을 날기로 했네.
대신 아름다운 사랑을 찾기로 했네.
30쪽
하루살이에게 허락된 시작은 단 하루뿐. 이를 깨닫게 된 하루살이들은 결심합니다. 밥 먹는 시간도, 말하는 시간도 아끼겠다요. "그래서 하루살이들은/ 밥도 먹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무얼 할까 고민도 더는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살이보다 많은 걸까요? 시간이 많은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일지 알 수 없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어쩌면 하루살이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동시를 읽으며 깨닫게 됩니다.
괴로움의 순간도, 즐거움의 순간도, 결국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하루살이가 아름다운 하늘을 날고, 아름다운 사랑을 찾기로 선택한 것처럼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겠지요.
무기력한 일상, 지치고 힘든 상황들, 걱정과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면 오늘 밤만큼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아름다운 것들을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어스름이 지나 어두운 밤을 통과하면 분명 새벽이 찾아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