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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y 15. 2023

선택의 적층

우주에 떠다니듯 가라앉지 않는 마음일 때

누군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할지

눈을 감고 가만히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야 할지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발 끝으로 버텨야 할지

나뭇잎처럼 흩날려도 될지 


불안에 젖은 가슴을 보면

긍정의 힘으로 바짝 말려야 할지

온몸이 흠뻑 빠지도록 나눠야 할지


염증 같은 괴로움이 피부를 뚫고 나오면

다 지나갈 거라며 눈을 질끈 감고 소독을 해야 할지 

손톱밑이 빨개지도록 긁어야 할지


부를 이름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문 외로움일 때

목을 가다듬고 내 이름이라도 힘껏 외쳐볼지

떠나간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려볼지


발목을 꼭 쥐고 놓지 않는 진흙 같은 무기력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이를 악물고 기어갈지

양 볼까지 잠기도록 드러누워 반짝이는 별을 볼 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막막함일 때

정상 바로 아래 걸려있는 구름 속이라고 생각할지

골짜기 사이에 낀 짙은 안개라고 생각할지


불면의 시간을 통과하는 열차 속에서

해맑게 양을 세던 지평선 너머의 어린 시절과 만날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한 선로를 원망할지


닿을 수 없는, 닿지 않을 것 같은 진심을 손에 감추고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게 꽃가루에 섞어 날려 보내야 할지 


그렁그렁하게 차오르는 감정으로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지

아니면 앞으로 채워나갈 여백을 남겨둬야 할지


사막같이 거친 오늘을 선택한 건

언젠가 오아시스가 나타나길 바라는 내 환상인지

그동안 촉촉하게 물을 주지 않은 내 게으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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